원기둥 -2-

처음 완성한 그림

by Jack Kim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소설도 잘못 쓴 문장은 지우고 다시 쓰면 되었다.

왜 학창시절에는 알지 못했을까. 왜 선생님들은 지우고 다시 그리면 된다는 그 간단한 말조차 해주지 않았을까.

아니다. 남자가 소심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선들을 긋기 시작했다.


원기둥은 명암이 나뉘어 있었다. 빛이 왼쪽 위에서 온다는 기본적인 이론에 따라 윗쪽과 왼쪽은 밝았고, 아랫쪽과 오른쪽은 어두웠다. 남자는 명암을 쉽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걸려있는 그림을 보고 그대로 보고 따라하기로 했다.


수많은 선들이 지워졌다가 다시 그려졌다. 아직 힘조절이 익숙치 않아 때때로 진한선이 나왔지만, 선생님은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다들 다르게 그리니까요."

그래. 다들 다르게 그리겠지. 다들 근육의 모양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고, 보는 세상도 다를텐데.

하지만 학교에서는 달랐다. 옳은 것이 있었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탈락이었다. 남자는 미술수업때마다 받았던 최하점이 기억났으나, 이제는 그 기억이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남자는 기억도 지웠다가 쓰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선을 그려갔다.


원기둥을 완성하는 데에는 약 두 번의 수업시간이 필요했다. 6시간 정도일까. 남자는 처음 미술학원에서 완성한 그림을 두고, 사진을 찍고는 오른쪽 위에 이름을 적고 간단한 싸인을 남겼다.


원기둥.jpg


남자는 한참동안 원기둥을 바라보았다. 뿌듯하다-. 라는 감정을 넘어선 그림이었다. 남자는 첫 수업으로 미술에 관한 두려움을 깼고, 몸은 비록 피곤했지만 마음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선생님도 뒤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잘 하셨어요. 다음에는 다른 걸 그려볼께요."

라고 칭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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