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두 개의 물체를 이용한 조금 더 심도 있는 명암과 원근감을 배우다.

by Jack Kim

엇갈린 벽돌 두 개.

남자는 잠시 갸웃했다. 동그라미. 다음엔 네모. 그다음은 다시 네모라니. 아마 세모나 다른 모양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 달리, 어떻게 보면 조금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순서였다. 뭐. 사실 크게 이상한건 아니지만.

의아해하는 남자를 두고 선생님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모가 두 번 연속이라니 조금 의아하시긴 할 거에요. 하지만 이번에는 두 개고, 이제는 원근감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갈 단계에요."

"음..원근감.."

남자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언젠가는 들어본 듯한 단어였다. 거리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기준이었나. 글쎄.

"자. 여기 벽돌을 보면 비스듬히 배치가 되어 있는데 윗 벽돌은 왼쪽이 조금 앞으로 나와 있고, 아래 벽돌은 오른쪽이 조금 더 앞으로 나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그 벽돌이 직사각형의 모양을 띄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볼 때에는 앞쪽이 조금 더 크게 느껴지는 거죠. 아주 조금이지만."

"음..."

"아직 이해가 안되신거같은데...??"

남자는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네. 아무래도 저는 직접 해봐야 아는 사람인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부족하신걸 알고 인정하시니 다행이네요. 그럼 해봅시다."

언뜻 보면 쉬워보였지만, 막상 선을 긋기 시작하니 전혀 쉽지 않았다. 단지 사물을 조금만 비틀었을 뿐인데, 그림의 난이도는 천지차이였다. 남자는 정말이지 지겨울 정도로 선을 긋고, 선을 지워갔다.

"아니. 조금 더 틀어야되요. 앞에는 크게. 뒤에는 작게."

"네..."

몇 번이고 선을 지우고 선을 다시 그었지만, 도저히 진전이 되지 않았다. 글쎄.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전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기분이랄까. 있는 힘껏 벽을 밀어내고 전진해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남자는 미술학원을 다니며 처음으로 미술학원을 나오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미술학원을 하루 쉬었다. 나가지 않은 날. 남자는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평소에는 눈 여겨 보지 않던 것들을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남자가 앉은 벤치의 나무 결이라던지, 푸르게 맺힌 풀잎들과. 나뭇가지들의 거친 질감. 일정하게 배치된 벽돌등.

잠시 후에는 아주 자세하게 관찰했다. 모든 물체에는 명암이 있었고, 크기가 달랐으며 원근감에 따라 나에게는 가까운 것이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였다. 아. 남자는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한참 동안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몇 십분간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남자를 누군가가 관찰했다면. 분명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했을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시간을 보내며 주위를 관찰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역시 남자는 해봐야 이해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음 주, 남자가 미술학원에 나갔다. 그리고, 꽤나 빠른 시간 내에 벽돌 그림을 완성했다. 오자마자 말 한마디도 없이 그림을 완성한 남자에게 선생님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어디 다른 학원에서 수업을 받으셨나..?"

남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아무래도 영 감이 안와서 직접 해봤습니다."


벽돌.jpg



남자는 그림을 완성하고, 싸인과 날짜를 써넣었다. 이번 완성은, 전의 원기둥과 네모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보람차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신경쓰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고, 새로운 세계가 열린 기분이었다. 아. 즐겁다. 남자는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던 그 보이지 않는 벽을 어느새 통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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