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배, 그리고 완두콩

이 혼종은 누가 만들었나

by Jack Kim

남자는 '벽돌' 이후로 뭔가 그림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도 깨달아야 할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자그마한 것이라도 분명한 수확이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까..남자는 호기심과 두려움을 느끼며,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남자가 선생님으로부터 받아들인 그림은 다소 해괴한 모습이었다. 머리는 배, 몸통은 사과, 그리고 양팔은 완두콩으로 이루어진 해괴한 것이었다. 남자는 최근 했던 게임에서 나온 명대사를 떠올려보았다.

'누가 이 끔찍한 혼종을 만들었는가.'

"끔..찍..하네요."

남자는 웃으며 선생님에게 농담을 건넸다.

"귀엽지 않아요?"

"음. 뭐 귀엽긴 하지만. 다소 해괴하긴 하네요."

"그렇긴 하죠."

선생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그림은 세 개의 다른 개체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자세히 보시면 배와 사과의 차이가 보이실거에요. 완두콩 같은 경우는 올록볼록한 것이 볼륨감을 강조하고 있죠. 자.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을 종합해서 그려야 되실 거에요."

"네. 한 번 해보겠습니다."

남자는 천천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과연. 천천히 살펴보니 개체들의 명암과, 윤곽이 모두 달랐다. 배는 정면에서 봤을 때에 중간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고, 양 귀에 해당하는 사과들은 크기가 작으며 마찬가지로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갔으나 거기서부터 뻗어져 나오는 줄기 두 개가 있었다. 양 팔의 볼록 볼록한 완두콩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명암의 그라데이션이 있었으며 몸통의 사과는 색이 짙은 듯 온통 어둠이었다.

남자는 그동안 해왔던 원기둥, 네모, 벽돌을 천천히 떠올려 보았다.

그동안 배운 것들.기본적인 명암과 둥글게 돌아나가는 선을 따라 그려지는 명암과 들어가고 나온 곳의 명암. 자연스러운 울퉁불퉁함과 그것의 그림자와...

모든 것들을 염두에 그림을 그려야 했다. 남자는 천천히 머리부분의 배 모양 부터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남자가 그림을 완성하는 것에 걸린 시간은 약 삼 주 였다. 일 주일에 한 번 학원을 나왔으니, 삼 일. 하루에 약 네 시간정도 수업을 들었으니 정확하게 들인 시간은 열 두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림은 무엇보다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개체가 세 개나 되었고, 각각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고려할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수 많은 선들이 지워지고, 새로 그려졌다. 한참을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하며 그리다 보니, 남자는 그림에 정이 들었다.


그림을 완성하는 날. 남자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이 친구 이름을 하나 붙여줄까봐요."

"뭘로요?"

"혼종이요. 혼종."

남자는 완성된 그림에게 '혼종'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림의 끝에 '혼종'이라고 적어두려고 했으나, 괜한 짓인것 같아 관두고, 왼쪽 위에 날짜와 이름을 적고 싸인을 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남자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남에게 보여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모작을 했지만 남자가 그린 그림이었고, 무엇보다 그림이 보기에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 그림을 카톡 프로필 사진에 올리고 대화명에 '누가 이 끔찍한 혼종을 만들었는가.' 라고 적었다.



혼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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