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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Jul 15. 2022

다시 통영!

떠나야 한다면 역시 다시 통영이어야 한다?

글을 못 쓴지도 몇 달이고 책 한 줄 읽지 않은지도 몇 달이다.

5월 초 단기방학 이후 내 생활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5월 초 단기방학의 글을 쓴 것이 있는데 그것 역시 마무리를 못하고 말았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D외고는 5월 초에 단기방학이 늘 있어 왔고 그때마다 특강을 해 왔는데 올해는 경쟁자가 3명이나 있는 덕에 욕심을 부렸다.

욕심이란 수입이나 명성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맡은 아이들의 실력 향상이라고 해 두자.

어쨌든 9일간 매일 강의하겠다는 내 얼토당토 한 계획을 학원 측은 장사 속으로, 학생들은 내신 일 등급이란 야망으로 받아들였다.


9일간 매일 30킬로 떨어진 곳으로 운전을 해 가서 9시간씩 강의를 하게 되었다.

잠은 잠대로 설치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극기훈련 같은 9일을 보냈다.

매일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하루가 지나면 안도하는 삶을 아마 처음으로 살아 본 거 같다. 얼마나 쉽게 살아왔는지 반성도 했다.

9일은 지나갔지만 후유증이 심했다.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지만 심한 감기몸살로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나 하나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동거인들이 하나둘씩 앓아누웠다. 젊은 사람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문제는 노모였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의 노모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 수박만을 찾았다.


수박은 귀찮아서 먹고 싶어도 사 먹지 못 하는 과일이다. 크고 자르는 것도 귀찮고 저장을 해 두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쩌랴…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영영 노모와 이별하게 되는 줄 알았다. 3주일을 꼬박 수박으로 버티던 노모가 드디어 조금씩 음식이란 걸 드시기 시작했고 몸무게가 4킬로나 빠졌지만 부활은 했다. 그녀의 부활과 동시에 외고와 일반고의 수행과 기말고사 준비로 시험문제를 만드는 시간조차 모자라 글은 한 줄도 못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책 역시 한 줄도 읽지 못하는 시간이 흘렀다. 내가 글을 쓰던 사람이란 것도 책을 좋아하던 인간이란 것도 잊고 살았다.

그렇게도 살아지니 신기했다. 머릿속은 언제나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저 아이의 특이한 행동을 써야지 하며 글감을 모으고 있었다고 치부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은 기말고사가 끝났다. 마지막 고 3의 내신은 정말 기운을 뺀다. 시험 범위가 일주일 전에 나오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수능특강 18강 중 12강이 시험 범위이다. 한 강마다 단어 시험과 일작 쓰기 문제, 오문 정정 문제, 한자 시험의 4세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재활용 불가인 일회용이다. 이런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조차 싫다. 물론 이 시국에 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을 느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힘든 것도 사실이다. 불평을 하고 싶으니 나약한 인간이다. 그래도 기운이 남은 것인지 공간과 공기를 바꾸어 보고 싶은 것인지,

여름방학 특강 전에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야 다시 또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떠난다면? 역시 통영이다. 일단 몸보신을 해야 한다.


단백질 보충이라면 역시 통영이다. 다찌다! 또 수많은 해산물들의 목숨을 수혈받아 기득권들의 자식들의 일본어 내신을 책임져 주어야 하는 이 땅의 사명을 갖고 나는 태어났다. 그래야 난 또 그 돈으로 밥을 사 먹고 노모 부양하고 살아갈 수 있다. 시지프스의 신화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의미 없는 노동의 무한 반복과 거기에서 의미 찾기를 실패한 나약한 나!!! 갱년기가 시작되고 건조한 일상이다. 어슴푸레한 슬픔과 그리움 따위는 없다.

목적과 목표만이 남았다. 무의미도 돈이 된다면 의미가 되어 버린다. 의미 있는 여행이란 이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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