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 사교육을 시작한 지 머지않아 20년이 된다. 그동안 숱한 학생들과 학부모를 만나면서 몇 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더 다양하고 개성적인 관계들로 넘치겠지만 그저 짧은 소견으로 외관상 보면 그렇다는 거다. 강한 부모나 그보다 더 강한 자식, 아님 그저 너무 강한 부모 밑에서 순종하는 척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치동이라는 대한민국 사교육 격전지에 와 있는 학생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그건 어떤 통계도 없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대치동 학원을 욕망 아줌마들의 놀이터라고 했다. 참 적절한 비유 같다. 자신들이 사랑을 무기로 모여 서로 내 사랑이 크다고 자랑을 하는 곳이다. 사랑 말고도 무기는 더 있어야 한다. 돈!
사랑과 돈으로 무장한 부모와 순종하지 않으면 내 이 부와 명예를 세습할 수 없다는 압박에 꾸역꾸역 따르는 아이들이 평일 저녁과 주말 내내 대치동에서 보내고 있다. 학원보다 식당을 하면 더 돈을 많이 번다고 그 아이들은 말한다. 집밥은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없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내가 직접 구멍가게 학원을 할 때는 뭐든 같이 해서 많이 먹었다. 정신적 허기를 치유하는 데는 집밥만 한 것이 없다. 성장기에 이유 없이 넣어지는 지식에 고달픈 아이들은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기고 손톱에는 늘 물어뜯어 생긴 빨간 핏자국이 있다. 저 나이 때는 저 빛나는 감수성에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의 주인공의 사랑이나, 아직까지 기억나는 시의 한 구절을 더 음미할 수 있는 마음을 공간을 남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한다.
직접경험 차단, 간접경험도 차단당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매일 학원에 주는 과제를 머리에 욱여넣느라 밥을 먹을 때도 카페에서도 뭔가를 보고 있다. 요즘 부쩍 학원 뒤에서 담배를 피는 어린 학생들이 눈에 보인다. 어른들 눈치도 보지 않고 심지어는 전자담배까지 피우는 학생들도 많다. 나도 옛날 같으면 눈총이라도 주었을 텐데 이제는 짠한 마음만 더 커진다. 저것도 자유라고 느끼나 싶다.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 표정들이 밝지 않다. 나도 부모라 요즘 반성을 많이 한다. 누구나 내 허물을 보기는 어렵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픔을 막아주려고 한 일들이 과연 옳았을까 싶다. 만약 내 딸이 건강하고 공부를 하려는 타입이었으면 나도 욕심이 나서 학원뺑뺑이를 시켰을까?
딸과 나는 대치동 한복판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다. 못난 엄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전학을 수없이 다녀야 했다. 천사 같던 아이가 숱한 전학과 새 학교에서의 여러 이지메를 경험하며 조금씩 변해갔다. 덕분에 지금은 지독한 예수쟁이가 되어버렸다. 나의 외가에는 예수쟁이가 많다. 나 역시도 누군가 종교를 물어보면 일단은 기독교라고 한다. 대치동 살지만 딸의 교육 때문은 아니었다. 난 사랑은 많았으나 돈이 없었고, 딸은 그 무거운 가방과 지식을 수용하기에는 체력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와 딸이 재수, 삼수할 때도 대학을 안 가겠다고 말을 할 때가 많았다. 나는 줄곧 자유롭게 딸의 의사를 존중했지만 한 가지는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학을 가지 않는 것. 어떤 대학이라도 좋으니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했다. 딸은 대학에 갔고 대학 안의 교회에 다니다 지독한 예수 덕후가 되어 갔다. 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예수쟁이가 없는 지금 이 시국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예수쟁이는 환영이고 자랑이라고.
-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