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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Nov 20. 2023

저 오롯이 좌절해 볼게요.  2화

나의 은사님!

     

 요즘 대학이란 곳은 가야 할 당위보다 가지 말아야 이유가 더 많다. 지독한 문(文)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답게 전 세계에서 가장 대학진학률이 높은 우리나라지만 요즘은 많이 변화되어 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왜 꼭 딸에게 대학을 가라고 고집했는지는 단지 내 욕심이다. 내가 유일하게 딸에게 바란 그저 더러운 욕심이었다. 사람들은 대학의 전공 이외의 교양과목들이 필요 없다고 한다. 시간 낭비라고 한다. 돈을 버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바에야 자신의 분야에서 더 경험을 쌓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도 한다. 맞다. 다 지당한 이야기다. 대학이란 곳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여 효율성 떨어지는 순수학문을 일부러 시간을 내서 그 분야에서 뛰어난 교수님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낭만적이지 않는가? 사실 요즘 대학생활은 잘 모르지만 나의 시절에는 그랬다. 전공수업보다 각 학년마다 꼭 들어야 하는 교양과목이 너무 좋았다.     


 난 일본에서 카톨릭계 대학을 다녔다. 교수님들도 거의 사제였다. 「죽음의 철학」이란 수업은 당시 세계적인 철학자인 독일분이었다. 무척 재미없고 졸린 수업이었다. 그래도 죽음이란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컸기에 그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는지도 모른다. 정신없이 졸음 속으로 빠지면서 이렇게 수면욕이 강한데 죽지는 못하겠다 싶었다. 영어는 필수였는데 미국분이 영어로 수업을 했다. 영어 울렁증이 있었던 나는 항상 제일 잘하는 동급생 옆에 앉아 통역을 요구했다. 성적표에서 가장 우울한 부분이다. 그리고 스페인 신부님 두 분이 계셨다. 한 분은 전공과목인 티브이 영상 부분과 매스컴 전반을 담당하고 계셨던 데베라신부님과 「자기애와 에고이즘」이란 수업을 하시는 가랄다신부님! 아 가랄다 신부님은 내 아버지보다 더 내가 존경하고 애정하는 분이다.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지금의 내 육신을 제외한 정신세계와 마음을 정비해 주신 분이다. 은사이자 아버지다. 나에게는!     


 가랄다신부님 강의는 인기가 많아 강당에서 했었다. 구석 자리를 좋아하는 나는 첫 강의 시간부터 눈물을 흘리며 20년의 모든 시간을 회개했다. 이유를 몰라 헤매던 모든 순간과 이유도  모르고 겪었던 아픔들을 치유받았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이야기가 나에게는 구원이고 용서이고 빛이었다. 스페인에 살았던 시간보다 일본에서 산 시간이 길어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셨다. 판서로 쓰시는 일어와 한자 단어들은 달필이었다. 외모는 영화배우보다 더 훌륭하셨고 목소리 또한 중저음으로 완벽했다. 저런 분이 결혼을 안 하시고 사제로 사는 이유도 무척 궁금했다. 사제이면서 무신론자인 까뮈를 강의했다. 신에게 자신의 영달을 비는 사람보다 카뮈처럼 신은 없다고 하며, 있다면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따지는 사람 쪽이 더 하느님과 가깝다고 했다. 난 고등학교 때 이방인과 페스트를 읽고 까뮈를 좋아하고 있었던 터라 그 부분에서 더 마음을 활짝 열었던 거 같다. 가짜를 싫어하고 가식을 혐오하고 오로지 진짜만을 찾으려고 하는 내 열망에 딱 부합하는 스승이었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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