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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Dec 13. 2023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면

외고 일본어 기말고사 후...

    

 외고 시험 대비는 창과 방패처럼 어떻게 공격해 올지를 예상하여 모든 대비를 다 해 주어야 한다. 범위의 단어를 일일이 하나씩 정리한다. 문장 쓰기를 만든다. 한자 읽기 시험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오문을 만든다. 오문이란 맞는 문장을 써서 조금씩 틀린 부분을 만든다. 물론 답지도 만들어야 한다. 자료는 곧 수업료다. 대치동 학원의 존재를 알고 싫어하는 외고 선생님들은 범위를 시험 일주일 전까지 알려 주지 않는다. 새 프린트도 계속 배부한다. 방패를 무력화하기 위함이다. 덕분에 미리 준비해도 끝이 없다. 내가 맡고 있는 학교는 2개고 학년은 1, 2학년이다. 학년 각각 문법과 회화가 있다. 총 8종류의 범위가 있다. 기말 전 한 달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필기한 단어 하나를 정리 못 해 주면 학생 몇 명이 달아난다.     


 내가 학원을 할 때는 이 물정을 몰랐다. 내 맘대로 학생들이 요구하면, 마음에 들면 해 주고 시 건방지면 안 해 줬다. 자료도 달라면 다 그냥 주었다. 수업을 안 했는데 수업료를 받는다는 것은 내 사전에는 없었다. 정말 이 무림(대형학원가)에 나와서 보니 그때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참 나를 물로 봤을 거 같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난 장사치가 아니다. 난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자녀분들이 올바른 일본어를 장착하여 다시는 일본에게 무시당하지 않는 당당함을 교육했다. 처음 대형학원에서는 마찰도 많았다. 요구하는 것이 싫었다. 그야말로 난 따까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보기 좋게 먹기 좋게 난도질을 해, 눈앞에 드시라고 갖다 바쳐야 하는! 5년이 지난 지금은 아주 잘 길들여졌다. 자본에 굴복하여 내가 먼저 외친다. “더 뭐가 필요하니?”     


 폭풍 같은 따까리 시간이 지나가면 황송하게도 만점을 받아 오시는 기특한 학생분도 계신다. 또 그럼 그분을 광고하며 내년 신입생을 맞이한다. 내신 최고점 배출! 1등급 최다 배출! 전단지 문구를 작성해야 하고 영상을 촬영하고 설명회 준비를 한다. 기말이 끝났다고 호락호락하게 쉬게 해 주지 않는다. 올해는 유난히 D외고 1학년들이 나와는 맞지 않았던 거 같다. 많이 왔다가 떠났다. 드문 일이다. 나름 만나면 순수한 호구로 호감형이라고 생각했는데 5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작년 1학년, 이제 고3이 되는 아이들은 이번 겨울 방학 때까지 강의를 해 달라고 할 정도로 나와는 절친들이 많다. 고3이 되는 겨울 방학 때는 지금까지는 아무도 일본어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신도 한 번이 남을 뿐이고, 수능 일본어는 이미 너무 쉬운 경지고 또 정시로 돌아서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이다.     

 

 결론은 없다. 아니 너무 뻔하다. 이 교육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내가 이 굴레에서 빠져나갈 능력도 없다. 난 내쳐지지 않을 때까지는 여기 대치동에서 악착같이 버티면서 어떤 뾰족한 창과 칼이 공격해 와도 막을 수 있는 방패의 역할을 영원히 해야 한다. 호구로 비실비실 웃으며, 지갑을 열어 간식을 조공하며, 고객이 만족하실 때까지 요리조리 해부하는 일을 즐겁게 해 나간다는! 행복하다는! 너무 자랑스럽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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