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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 현 Dec 23. 2023

불안과 공포

연말 새 학생을 맞이하기 전의 

    

 새벽 1시쯤 잠이 들었나? 무슨 꿈을 꾼 것인지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렸던 것인지 문득 잠에서 깬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다. 고작 2시간 남짓을 잤다. 갑자기 영하로 10도 이하로 떨어진 겨울밤은 유난히도 조용하고 스산하다. 정말 무슨 꿈을 꾼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르치는 학생들이 나왔던 거 같기도 하고 가족들이 보였던 거 같기도 하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강의가 있는 날이다. 내가 학원을 할 때도 이맘때가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신입생들이 얼마나 올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광고도 일절 하지 않았고 전단지도 돌린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데도 학생들이 찾아왔던 것이 대단하다. 젊었고 용기가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난 실력이 있고 학생들에게 대한 애정이 충만하므로 소개로 다 온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망했지 싶다.  

    

 한 명의 아끼던 남학생이 오늘 다른 학원 특강을 들으러 간다는 것이 이렇게나 크게 다가온 걸까? 난 항상 내 잠재의식에서 느끼는 심각성을 현실에서는 반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벌써 대치동에서의 강의는 20년이 넘어간다. 외고 강의도 15년도 더 하고 있다. 자타공인 대치동 일본어는 나란 브랜드로 고정되어 가고 있다. 아니면 지금이 최고 정점이라서일까? 이제 내려올 때라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실제로 후배들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 할 시기는 넘은 지 한참이다. 이루어 놓은 것이 너무 없어서 그만둘 수가 없을 뿐이다. 먹고살 수가 없어 꾸역꾸역 일하고 있을 뿐이다. 뉴스에서도 대한민국의 50,60대가 가장 바쁘게 일을 한다고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안심도 되지만, 일을 그만두고 나서 살 시간이 더 긴 건도 암담하기도 하다.   

  

 늘 그렇듯 불안을 잠재우려면 보들보들한 고양이를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뉴스를 틀어 놓고 누워 있는다. H외고 설명회 영상을 찍으라는 학원의 명령도 있었지만, 되도록 여러 생각을 지우려 노력해 본다. 오늘 두 개의 특강을 끝내면 정말 올해의 강의는 끝이다. 2주간의 시간이 빈다. 외딴섬으로 여행도 가고 싶지만, 집 안 정리도 해야 한다. 책과 자료 정리를 하고 흩어진 글들을 정리하고 새해의 준비를 해 두고 싶지만, 결국 또 나태함과 체력의 빈곤으로 주저앉아 빈둥거리며 시간을 버릴 것이다. 솟아나라! 자신감이여! 솟아나라! 젊음이여!      


 잠은 별로 못 자고 시작하는 날이었지만, 아이들과의 시시덕거림과 마지막 쫑파티로 약간의 기운을 회복하고 바로 전 설명회 영상을 겨우 찍었다. 몇 년 전에 유튜브를 매일 찍고 편집을 할 때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이걸 왜 하고 있는지 하는 당위성조차 잘 느끼고 있지 못하는 한심함이 크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가 나아가는 길을 잘 보고 걸어가야 한다. 아직 정상을 멀었다. 지금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내려와서는 안 된다. 내가 미처 전혀 가 보지 못한 정상이 따로 있다. 떠나간 학생보다 아직 남아 나를 따르는 학생들을 생각해서 불안보다는 부지런함을 장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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