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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Jun 08. 2020

인간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내가 못마땅하게 느껴진다면..

종교적으로 불교를 '믿는'다기보다는, 철학적으로 불교의 생각을 좋아한다.

그래서 신자로서가 아닌, 그냥 다른 이의 생각이 궁금한 한 사람으로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종종 본다.

어느 날,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간은 스스로 과대평가하며 환상을 갖는다.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의 나를 보면 못마땅하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스로 부끄럽고 자존감은 낮아지게 된다.



아, 과소평가가 아니라 과대평가였구나.

내가 만들어낸 과대평가의 거울이 나를 이렇게 못난 모습으로 비쳐주고 있었구나 싶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때로는 그렇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써봤다.


아침 5시 ~ 6시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됐구나! 하면서 눈을 뜬다.

알람은 딱 두 번 울리면 충분하다. 다시 끄고 자야지 하는 게으른 생각 따윈 안 한다.

기지개를 켜며 기분 좋은 음악을 틀고 스트레칭을 한다.

이불을 반듯이 정리하고 부엌으로 향한다. 밀린 설거지는 없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는 성격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ㅎㅎ 건강하게 야채와, 아닌 올바른 국어 사용을 위해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며, 배는 부르지 않을 만큼만 먹는다. 

여드름 하나 없는 얼굴을 씻으며 얼굴을 보면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끼고, 풍성한 머릿결을 말리면서 멋을 부린 듯 안 부린 듯 자연스럽고 깔끔한 스타일링을 한다.

옷장에는 항상 새것처럼 관리되어 은은하게 기분 좋은 냄새가 나며,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좋은 재질에 집중한 옷으로 여유롭게 채워져 있다. 옷이 많은 건 아니지만, 하나하나 그리 값싼 옷은 아니다.

군더더기 없는 몸이라 어느 옷을 입어도 보기 좋다. 한껏 자신감을 얻는다. 

향수를 뿌리면서 이 냄새를 사람들이 싫어하려나와 같은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익숙한 패턴으로 아침을 보내고 출근한다.


일 하러 가는 것이 즐겁다. 뜨거운 마음으로 일 한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회사로 가면 좋은 분들이 있어 어떨 땐 보고 싶은 마음까지도 든다.

도착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일에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업무를 본다.

다양한 사람들과 전화를 하면서 자신감 있지만 겸손한 목소리로 대화한다.

10시 반만 되면 시계를 힐끔거리며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한심한 마인드는 없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 되어 회사 사람들과 즐거운 식사를 하고, 유익하고도 건전하며 재미있기까지 한 대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식곤증 따위는 없다. 밥을 배불리 먹지 않고 필요한 영양소 위주로 골고루, 그리고 적당량만 먹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후를 숨 가쁘게 보내고 나면 어느새 오후 5시.

퇴근이 1시간 남았지만, 누가 시키는 대로 일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이고, 그 속에 의미를 찾기 때문에 퇴근 시간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은 외부 미팅 겸 식사 자리가 있어 지금 출발해야 한다.

회사분들의 믿음과 기분 좋은 인사를 받으며 회사를 나와 약속 장소로 간다.

업무로 만나게 된 분이지만 사적으로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1년 전부터 가까이 지내고 있다.

고급 식당은 아니지만 실력 있는 사장님이 만들어내는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헬스를 가려고 했지만 이 음식엔 어쩔 수 없다. 난 맛있는 음식에 술을 즐기는 낭만적인 사람이니깐.

어제도 주말이지만 헬스를 갔기 때문에 죄책감은 별로 없다.

술을 먹으면서도 전문용어가 섞인 현대 도시적인 뉘앙스의 업무 얘기를 하다가, 서로 대여섯 번 술잔을 부딪힌 뒤부터는 인간적이게 서로 사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오늘도 참 좋은 시간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기분 좋은 냄새가 느껴진다.

술이 좀 취했지만 가지런히 옷을 걸어두고, 조금 냄새가 밴 옷은 스타일러에 넣어 바로 냄새를 뺀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어제 읽다만 소설책을 집어 든다.

다양한 삶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이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스탠드 하나 켜진 방에서 유튜브를 보며 실없이 웃거나 눈뜨면 내일인 것이 싫어 비생산적으로 시간 때우는 짓은 하지 않는다. 슬슬 잠이 온다.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알람을 새로 맞출 필요는 없다.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다.








하,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 나의 삶과 다르지는 않지만, 다른 부분이 많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그렇게 어렵다.

이렇게 살지 않는 나를 자책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며 또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사실 내 모습이다.

그러니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스님은 현실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하시는데, 사실 현실의 나로 그대로 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난 이루고 싶은 것이 있고, 그걸 이루려면 환상의 나처럼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의 나를 고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스님께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라고 한 말씀은 그렇게 그대로 살라는 건 아니었다.

현재의 나로부터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시작을 과대평가된 환상에서 한다면, 시작점이 가장 큰 괴리이고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시작이 현재의 나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희망찬 것이 될 것이다. 지금 현재 여기서, 부족한 점을 하나씩 개선해가면 된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고 끌어안자. 


이게 나다.


이걸 깨닫고 지내다 보니 요즘은 좀 나아진 것 같다.

지난 시간, 경험의 폭을 급하게 확장하다가 구멍이 송송 뚫려버린 나를 되돌아보며 그 구멍을 차근히 채우고 있다. 일례로 부족한 영어 공부를 하러 학원 기초반에 다닌다. 어린 학생들과 함께 앉아 있지만, 창피하지 않다. 그냥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난 내가 덜 못 마땅하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멋있는 사람이 될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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