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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Oct 27. 2018

월요 조회• 회사 예배

권위주의와 착각... 가부장적 사회의 추억

학창시절 매주 월요일의 조회. 매번 같은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몇십 분씩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 안 됐다. 녹음테이프 틀어 놓은 것 같은 똑같은 설교와 잔소리만 빼면 조회는 20분도 안 걸릴 것 같은데 한 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게다가 날씨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그렇게 서 있어야 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권위주의가 무엇인지도 알고 당시 시대상도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선생님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나는 다소 순종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생각은 해도 행동은 안 했으니까. 아니면 쁘띠 부르주아(Petite bourgeoisie) 기질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권위주의에 대해 기왕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오래전 추억 하나를 더 소개하려고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아이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교내 시위를 한 적 있다. 1989년이었으니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고 지금이라면 방송에도 나올 일이지만 그때 아이들의 기특한 행동은 결국 학교 담을 넘지는 못했다. 당시 학생회장은 삭발(削髮)까지 했다. 아이들이 분개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사회에 줄 닿아있던 세무부장의 비리 때문이었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미 그 마음속에 레지스탕스(Resistance)가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친구는 대학 가서도 학생운동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썩은 권위에 저항하고 습관 된 악습을 바꿀 생각은 전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이야기하고 나니 눈빛이 남달랐던 그 친구는 지금도 그렇게 짱짱하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관련 시위 현장


사실 나도 학교 밖에서 선배들에게 당시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듣고 있었다. 그 학생회장과 함께 말이다. 당시 대학생들의 학생운동은 극에 달해 있었고 주요 행동 이데올로기(Ideologie)로  반정부 정서가 강했다.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달으면서 민족 해방 NL과 민중민주의 PD 같은 급진적인 좌파들이 학생운동 세력 내에서 충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근간에는 독재라는 파국(破局)으로 치달은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이었다. 일부에서는 지금도 당시 학생들이 공산주의에 물들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반대파들의 모략(謀略)이다. 대부분은 순수했고 그나마도 당시 정부, 아니 독재자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걸 알았다. 문제는 지도층 중에 지나치게 열심을 부리던 무리였다.


진정성 없는 말은? @RyanMcGuire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요일 아침조회와는 영원히 이별한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출근했는데 이 회사는 월요일 조회를 했다. 사장의 훈화(訓話)는 5분에서 길어야 10분, 다소 듣기 거북한 내용이라도 짧아서 들을 만했다. 하지만 조회 전 직원의 인도로 불렀던 찬송가는 어색했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 바로 그 월요일 조회에 사장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가 와서 설교를 하고 아줌마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에 아연실색(啞然失色) 했다.


직원들은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졸지에 개신교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물론 이 예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애초에 구조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 마음속에 충격으로 남아있다.


교장 선생님의 잔소리는 심각하게 보면 권위주의(權威主義)요. 가볍게 보면 '꼰대' 짓이지만 회사 조회에 자기가 다닌 교회 목사와 권사들을 부르는 사장의 행동을 뭐라고 해석해야 할까. 그때는 가늠이 안되는 문제였는데 나중에 내가 교회에 출석하면서 그 사건을 해석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동의(同意) 따위는 애초에 물 건너 간 것이었고 더 큰 문제는 우상숭배(偶像崇拜)였다. 회사 직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명목으로 목사에게 자기의 열심을 보이고 자기 회사를 자랑하려는 목적 말이다. 자기가 높아지려는 의도 말이다.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고! @Free-Photos


그때 나 지금이나 그 사장이 출석하던 곳은 요즘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교계에서도 지탄받는 명성교회이고 회사에 왔던 목사는 김삼환이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나는 그 사장의 행동이 완벽하게 이해됐다. 왜곡된 생각들이 모여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은 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고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된 것이다. 회사 이름에 버젓이 예수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말이다.


그 회사는 지금은 더 커졌고 계열사도 몇 개 거느리고 있다. 이제는 사내 예배는 물론 월요일 조회도 어려울 것이다. 사회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으니 말이다. 또 오래전 조회시간 예배는 그 회사를 다니던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동의와 협조 또 직원들 다수의 침묵으로 가능했는데 지금의 회사원들을 그걸 용납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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