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me
방송인 정선희가 말한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떠돈 적이 있다. 한 동료 연예인이 사람들이 자신을 잘 모르면서 미워한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방송인 최화정이 별 거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너의 장점은 잘 모르면서 미워하지? 근데, 사람들은 어차피 너의 단점을 잘 모르고 좋아하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이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선희는 일부러 ‘포즈’를 두고 말했다.) 퉁쳐.” 난 이 ‘퉁쳐’라는 말이 웃겼다. 누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태도는 이토록 쿨하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나는 이런 쿨함을 얼마나 가졌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쿨하기 전에 먼저 나에게 장점과 단점이 무엇일까? 떠올려보지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번에 정의할 수 없고 상황과 사람에 따라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몸에 생긴 당뇨는 자신있게 단점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단점이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니까. 나부터도 당뇨라는 병에 대한 편견이 없다 보니 사회적으로 당뇨에 ‘질병 낙인’*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몸이 심상치 않아지고 제대로 치료하고 관리하게 되면서 당뇨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는 1형당뇨 커뮤니티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을 통한 간접경험이었다. 관리하지 않아 생긴 병, 음식을 마음데로 못 먹는 병, 유전으로 생긴 병 등 사례는 끝도 없었다. 최근에는 한 1형당뇨인이 마트에서 겪은 이야기를 올렸다. 어떤 할아버지가 “당뇨! 사탕”이라고 외쳤는데 그 옆에 쓰러진 할머니가 있었다. 글쓴이는 곧바로 알아채고 할머니에게 주스를 먹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옆에 다른 고객들이 당뇨인데 주스 먹으면 안 된다고 수근덕거렸다. 글쓴이는 한 번 더 말했고, 마트 직원이 주스를 먹인 덕분에 할머니는 잠시 후 의식이 돌아왔다. 그때 갑작스러운 음식물 섭취 때문이었는지 할머니는 토를 했는데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은 주스가 원일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한다고 글쓴이는 적었다.
커뮤니티 카페에는 당뇨를 관리하는 여러 노하우와 어려움에 대처하는 법, 필요한 도움들뿐 아니라 이러한 편견의 순간들도 공유되고 있었다. 난 모범생처럼 이 모든 정보와 지식을 습득했다. 그래서인지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내 병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가 맞을까?) 사람들과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실 때마다 난 인슐린을 든 파우치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에서 몰래 인슐린펜에 주삿바늘을 꼽고 배에 갖다 댔다. 화장실이 없는 공간에서는 혈당이 높아도 인슐린을 꺼내지 못했다. ‘나중에 집에 가서 맞지, 뭐. 한두 시간 쯤 고혈당이야 괜찮을 거야.’ 하고 넘겼다.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야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내 당뇨에 대해 알지 못했으므로 그 어떤 당뇨에 관련된 말들을 들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내 형제로부터 “너 당뇬데 과일 먹어도 돼?” “나이도 어린데 어쩌다 당뇨에 걸렸을까.”와 같은 말을 들었다. 가족도 이럴지언데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어떨까. 사람들에게 도무지 당뇨를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어. 괜히 오해받고 편견받는 건 싫으니까.’ 이런 생각이 마음 속에 쌓여갔다.
마음 한켠으로는 ‘생각해보면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단지 다른 건 손끝에 피를 묻혀 혈당을 체크하고 인슐린으로 관리한다는 것밖에 없잖아.’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어도 외부에서 주입하는 인슐린으로 혈당을 조절할 수 있기에 생활 자체는 크게 불편하거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주삿바늘 공포증도 없고 하루에 서너 번씩 바늘을 몸에 찌를 수도 있다. 이런 내가 왠지 주변 사람들을 속이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숨기고 있지? 뭐가 무서운 거야?’ 결정적으로 ‘사람들은 별로 나한테 관심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바뀌기로 결정했다.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갈 때 일부러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 테이블에 잠깐 인슐린 펜을 꺼내고 “내가 당뇨라서 인슐린 주사 좀 맞을게.”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누구도 ‘어쩌다가?’하는 눈빛은 보내지 않았다. 그저 위염 약이나 감기 약을 먹는 사람 보듯 대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래 보였다.
혼자서는 더 대범했다. 설명할 지인이 없었고 누가 봐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일하다가 카페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인슐린펜을 꺼냈다. 다만 사람들 앞에서는 지방이 넉넉한 배를 드러내진 못하고 팔뚝 중에 살이 좀 많이 잡히는 곳에 인슐린펜을 꽂았다.
(계속…)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이 용어를 처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