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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Oct 16. 2024

음악을 하는 사람 연극<델타보이즈>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4인조 남성 중창단. 딱 거기까지만 보고 연극을 보게 됐다. 악기로 치면 퀄텟에 가까울 4인조 중창단. '놀면 뭐하니'에서도 멋진 곡도 보여주지 않았나. 얼마나 멋진 공연을 준비할까 기대됐다. 어쩌면 색소폰을 처음 시작하게 만든 '스윙걸즈'를 같은 느낌은 아닐까. 



하지만 놀랍게도 대부분의 시간 느꼈던 건 '이래도 될까?' 란 의문이었다. 남성 4중창 대회를 상금 때문에 시작했는데 그렇게 열정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다들 생계가 그리 넉넉지 않은데 그렇다고 부지런하게 일과 음악을 병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각자의 사정은 있었다. 일록은 공장에서 일을 돕고 있었고, 예건은 미국에서 돌아와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만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대용은 생선 장사를 하고 있고, 준세는 아내와 함께 와플을 팔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노래를 하고 싶었던 건 대용이었다. 그에겐 노래를 하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 김병지를 보니 다른 선수들은 모두 은퇴했는데도 열심히 골키퍼를 하고 있었다면서, 그도 하고 싶었던 노래를 다른 핑계 대지 말고 시작하자 한 것이다. 사실 그게 맞다. 하고 싶으면 늦은 건 없고 그냥 하면 된다. 남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잘하든 못하든 용기를 내어 전국 노래자랑도, 슈퍼스타 K도 도전했다.  아마도 그가 노래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면 노래를 못한다며 비웃음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노래도 타고난 부분이 있고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박자를 맞추고 표현하는 것들은 배우고 익힐 수 있었을 테니까. 그는 여름에도 겨울 정장을 입지만 델타 보이즈 모임에는 늘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처음 '봄날은 간다'를 오디션으로 불렀던 모습부터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록은 왜 예건이 추진하는 대로 남성 중창단을 하기로 하고, 예건은 왜 하자고 해놓고선 옥상 바닥에 자주 누워있었을까, 준세는 아내랑 자주 싸우면서도 왜 대용이가 하자면 형을 이기지 못하고선 대용이가 노래할 때 랩을 했을까. 자기주도적이지 않고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대용이보다 조금 덜 용기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대놓고 음악이 좋다고, 노래가 하고 싶다고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못 이기는 척, 누가 필요하다고 하고, 하자고 하면 하는 사람인 건 아닐지.


이렇게 추측한 건 그런 모습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콧대가 높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오디션을 보고 부족한 실력이 탄로 날까 봐,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음악을 하기 두려운 마음이 있다.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마음에 요청이 들어오면 거절하지 않고 할 때가 많았다. 내심 좋기도 하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느낌도 들고, 이것도 나름 스카우트 아닌가 싶고. 몸담았던 곳에서만 있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함께 합주할 때면 긴장되지만 반갑다.


우여곡절 끝에 델타 보이즈가 결성되고 처음에 제리코로 시작하는 노래를 한다고 했을 때 역시 수상은 포기한 건가 싶었다. 이런 곡으로 경연 대회에 나가면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엄청나게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모르는 곡에 엄청난 감명을 받지도 환호를 하지도 않을 텐데. 


그런 우려가 무색하게도 남성 중창단 대회는 참가자 수가 적어서 대회가 취소되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게 된 일록은 좌절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연습을 하고 자신들의 무대를 준비한다. 대회는 델타 보이즈를 준비하게 만드는 계기였을 뿐이다. 다들 멋지게도 입었다. 진지하게 연주 복장으로 갈아입고, 레게머리를 하던 일록마저 머리를 깎았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제리코만 불리던 노래를 듣게 된다. 생각보다 잘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조금 아쉬운 부분도 보인다. 그러면 어떤가. 아마추어 같네, 프로 같네 같은 평가를 받자고, 잘해야만 음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할 수 있는 한 좋은 소리를 추구하는 건 필요하지만, 지휘자 선생님께서 언제나 말씀하셨듯이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하면 된다. 처음에 박자도 잘 맞지 않던 이들이 저렇게 안무도 넣어서 노래를 한 곡 완성할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지는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특히나 유일한 기혼자인 준세는 아내와 싸우면서도, 그래서 화가 나 대용에게 받아치면서도 델타 보이즈를 그만두지 않았던 게 신기했다. 실제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합주를 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방은 합주를 하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할까? 그리고 가족이 더 생긴다면 그러다 못하게 되진 않을까? 아이가 클 때까지 못 나오거나, 배우자에게 양해를 구하면 될 수도 있다. 그 양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알고.


준세의 아내는 자꾸 연습을 한다며 도망가는 남편에게 사정없이 화를 냈지만, 놀랍게도 제리코 노래를 듣고서는 한번 해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노래냐면서 하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마음에 든다고 하니 관객마저도 마음이 놓인다. 그래, 연습 꾸준히 하면 무대가 넓어지는 거 아니겠어? 옥탑방에서도, 와플 가게 앞에도, 생선 가게 앞도. 음악에는 공간의 제약도 없다.


종종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이고, 사는 게 거기서 거기라 하는 게 어쩌면 그런 것 아닐까. 요즘 들어서 생각 드는 건 역시 취미가 있는 게 좋긴 좋다는 것. 취미는 취향의 영역이니 사람들이 뭐라 할 것도 없다. 아니 왜? 왜 영화 같은 걸 봐? 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캠핑을 가? 같은 질문은 취미의 영역에서는 묻지 않는다. 궁금해할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어도, 혐오하거나 경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취미도, 직업도, 삶도 중간중간 불안감에 휩싸인다. 누구나 잘하고 싶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저 그렇게 해서는 그저 그렇게 애매한 사람처럼 스스로 느껴지곤 하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악보도 볼 줄 모르고, 박자도 어색한 사람들은 평생 음악을 할 수 없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음악을 배우고 싶어 하지 않거나 금방 그만두게 된다. 음악이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전유물이 되고, 누군가가 일방적인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면 그 또한 불공평한 일은 아닌가. 음악이 사실 그렇게 만들어 두었을 리는 없고, 우리의 생각이다.



그게 위로가 됐다. 델타 보이즈가 무사히 무대를 올리는 우당탕탕 한 과정이. 갈 곳이 없어 옥탑방에 모여서 연습을 하고, 같이 김치찌개와 라면을 직접 보글보글 끓여 먹는 연극이라서. 우리가 향유하는 음악은 정제된 것일 때가 많다. 좋은 무대에서 멋지게 꾸민 유명한 사람들을 보면 음악을 하면 크게 성공을 하게 되는 모습만 그리게 되기도 한다. 애초에 음악으로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내게는 거리가 먼 일이다. 늘 우리는 직접 돈을 내고 공간을 빌리고 무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석 초대를 한다고 해도 그 자리는 쉽게 가득 차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많든 적든 무대에 설 때마다 늘 설레고 떨린다. 늘 고민된다. 음악에 전념하기도 쉽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은 여전히 민망하다. 


델타 보이즈 멤버들처럼 떠밀리듯 시작했지만, 때로 아쉽고 씁쓸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무대가 쌓여 매번 조금씩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미래에는 혼자서도 무대를 꾸밀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생각하게도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구나. 왜 음악을 하는지, 그리고 왜 함께 하는지는 요즘 조금 알게 됐다. 종종 이상하게도 뭔가가 딱 들어맞는 순간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혼자만의 느낌이지만 몸이 곤두서는 그 느낌에 수긍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 이 리뷰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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