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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즈메이즈 Jan 24. 2023

수업 중 자살 시도를 한 학생

기간제 교사로 살아남기 6

 *해당 글에 등장하는 학생에 관한 내용은 일부 각색되었습니다.



 짧디 짧은 교직 생활 동안 겪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 그 사건일 것이다. 내 수업 중 학생이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죽겠다는 말을 남긴 채.


 민호(가명)는 다소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수업에 통 집중을 하지 못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장난을 걸거나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교사와 학생을 불문하고 상스러운 욕을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 무언가 물어보면 일본어로 웅얼거리며 대답했다.


 보통 젊고 무섭지 않은 선생님들 수업에서만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민호는 나이가 있고 무서운 선생님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폭력성을 드러냈다. '내일이 없이' 산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렇다 보니 민호의 반에서 수업을 할 때면 항상 긴장을 하게 되었다. 헛소리를 하면 일단 조용히 시키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그냥 무시했다. 그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다 받아주기엔 다른 학급 구성원들의 수업권 침해가 심각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5월 말이었다. 수업 중 민호가 옆자리에 앉은 수민(가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수민이는 평소 그런 장난을 거의 받아주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수업 중 중요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호의 말을 무시했다. 민호는 곧바로 '씨발 좆같은 게'라며 크게 욕을 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만한 성량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민호에게 다가가며 '수업 중 욕을 하면 선생님과 개별 상담하는 거 잊었니?'라고 물었다. 민호는 답이 없다가 '전 상담 못하겠으니까 그냥 죽을게요'라며 곧바로 창문을 열고 난간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하다. 귀가 먹먹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앞에 하얘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얼어붙은 시간이 오래된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몇 초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쨌든 아직 민호는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창문 바깥의 아래쪽에는 폭이 좁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민호는 그 부분에 발을 걸친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나는 일단 창문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최대한 침착하려 노력했다. 솔직히 당장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크고 정확하게 '다시 들어와'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민호는 약간 당황한 듯했다. 민호는 다시 천천히 교실로 돌아오려고 했다.


 복병은 같은 반 학생들이었다. 평소 민호한테 당한 것도 많고 쌓인 것도 많은 학생들은 민호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그냥 죽어라' '죽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 '지겹다'라고 소리 질렀다. 나는 민호에게만 집중하느라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중에 그 모습을 찍은 학생들의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실제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학생을 보며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민호는 다른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뛰어내렸다. 그 순간의 민호의 표정은 실망이 가득해 보였다. 민호가 떨어지는 순간 창문으로 뛰어가 아래쪽을 보았다.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했지만 다행히 그런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았다. 민호가 떨어진 높이는 2.5층 정도였고 바닥에는 잔디밭이 있었다. 민호는 잔디밭으로 떨어진 채 잠시 대자로 누워있다가 학교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119를 부르는 동시에 교감실로 뛰어내려 가 교감 선생님께 상황을 대충 설명하고 민호가 있는 곳으로 갔다. 교감실에서 민호가 누워있는 지점까지는 매우 가까웠다. 민호는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치지 않았다. 원래 자주 탈골되는 어깨가 약간 불편하다고 했을 뿐이었다. 곧 구급차가 왔고 민호의 담임 선생님이 민호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시간 뒤 이상이 없다는 연락을 받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이제 남은 건 행정업무였다. 학생부 선생님들과 모여 상황을 진술했다. 교육지원청에 보고하기 위해 진술서를 작성했다. 사건을 목격한 학생들을 불러 영상을 확인하고 관련 사실을 유포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담임교사는 학부모에게 상황을 알리고 안전공제 서류를 작성했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나니 퇴근시간이 훌쩍 넘어있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민호의 표정과 그 순간의 멍해지던 느낌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민호는 상담과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건 다행이었지만 나를 위한 상담은 받기 어려워 보였다. 교원치유센터 같은 게 있다고는 들었지만 주변에 센터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기간제로서 그런 도움을 받기도 곤란할 것 같아 포기했다. 오히려 내 잘못으로 인해 민호가 자살시도를 한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계약 해지가 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었다. 그 부분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쉽게 뛰어내릴 수 없도록 창문에 안전 난간을 추가로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민호에 대한 소문이 사실 반, 거짓 반의 비율로 섞어 돌아다녔다. 별로 좋은 소문은 아니었다. 민호는 약간 늦게 학교에 와서 멀쩡한 얼굴로 수업을 들었다. 그다음 날부터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시간에 소시를 지르고 욕을 하고 가끔은 수업 중 뛰쳐나가기도 했다. 나는 민호를 보는 게 곤란스러웠다. 민호뿐만 아니라 사건 당시 야유를 날리던 아이들도 대하기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알아서 극복하는 데 2주 정도를 소모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이렇게 담담히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또 겪고 싶은 건 아니다. 그 누구도 이런 상황에 처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학생의 입장이든 교사의 입장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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