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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Sep 10. 2022

명절에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명절이 되면 속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지 3년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고향까진 네 시간 남짓 걸리고 장거리 이동을 버틸 몸이 없으니 갈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저녁엔 엄마가 해주던 굴전이 먹고 싶어 배달 가게를 찾아보다가 모두 실패하곤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고향에 내려가면 엄마가 해주던 굴전, 내가 유산한 후에도 고향에서 미리 만들어 와 다시 프라이팬에 지져주던 굴전이 먹고 싶었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내가 만들 엄두는 나지 않았고 백방으로 찾아봐도 먹을 방법은 없었다. 명절인데 엄마가 해준 굴전이 먹고 싶다고 전화할까 싶었지만 말하다 울어버릴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엄마에게 나는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무뚝뚝한 딸일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내가 울어버릴까봐 전화를 하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몸이 안 좋을 때면 전화를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어. 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면 전화도 못 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거짓말에 능하지 않은 편이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오는데 오빠는 집에 언제 오는지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싶을 때 전화를 하지 못했다. 그걸 내가 가서 보면 좋았을 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갈 수 있다면 그런 안부를 물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명절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울적해졌다.


아픈 이후 오래도록 명절은 나에게 그저 긴 휴일이기만 했다. 가족들을 만나러 가지 못했다. 명절에 단 하루 이사 간 오빠 집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너무 무리해 며칠을 뻗었다. 잠깐의 반가움으로 기나긴 후폭풍을 마주해야 했다. 장거리 이동은 더더욱 피하게 되었다.


긴 연휴 기간 동안 난 그저 집에만 있는다. 명절이라고 몸이 특별히 좋아지지도 슈퍼파워가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것을 할 수는 없다. 그저 길게 집에 머무른다. 사실 명절과 명절이 아닌 날의 차이는 없다. 나의 그리움만 차이가 날 뿐이다.


명절이라고 고향에 가고 친정에 들르고 시댁에 들르고 전을 부치고 조카와 노는 보통의 일상들이 모두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진다. SNS로 사람들의 사진을 보다 부러움만 커진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보통의 명절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게 새삼스럽다. 내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일들을 하고 있었을 텐데 남편은 나를 만나 그저 나처럼 긴 휴일을 보내게 되었다. 살아서 보답할 것이 많은 사람이다.


대학교 때부터 집을 나와 살던 나는 명절에 고향 집에 돌아가는 일을 항상 설레하며 좋아했다. 명절 전에는 매번 표를 구하느라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가 재빠르게 표를 예매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작은 지역 특산품을 사들고 조금 막히는 고속도로를 뚫고 녹초가 되어 도착하면 엄마와 아빠가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이 좋았다. 마침내 집에 돌아온 포근함과 안정감이 좋았다.


언젠가 오빠가 살던 지역이 가까운 곳이었을 땐 내가 그곳으로 가 같이 고향에 내려가기도 했다. 오빠를 오랜만에 만나고, 오빠와 내가 같이 집에 도착했을 때의 엄마의 함박웃음을 보는 게 좋았다. 고향에 내려가는 것은 항상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연휴 기간엔 오랜 중학교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을 본지도 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 모두 하는 일이 있고 아이들이 있어 내가 가야 만날 수 있다. 명절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갈 수 없다. 그리운 친구들이다.


가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  때면 하행선의 안내 방송을 듣게 된다.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 안내 방송을 들으면  이내 그곳이 그리워진다.   없다는  알면서도 하행성 열차를 흘깃 쳐다본다.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고향은 항상 그곳에 있고 열차는 매일 떠나니 집에 가는 건 일도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은 그저 이곳에만 있을 뿐이다.           

  고향에 내려가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놓지 못하던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 간다는 것은 어릴 적 엄마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 같아 따스하고 평온했다.



올해는 명절 3주전 오빠와 엄마가 집에 왔다갔다. 오빠가 내가 좋아하는 고향집 옆 떡집의 모싯잎 송편을 들고 있어서 놀랐다. 겉으론 약간 놀랐지만 속으론 많이 좋았다. 송편을 얼려두고 보물처럼 아껴 먹고 있다.

  지난 3년간은 내가 갈 수 없었기에 가족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종종 찾아왔다. 오빠의 집과 고향 집과 내가 사는 곳은 모두 네 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너무 멀어서 쉬이 이동하기 어려운 거리다. 서로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고향 집에서 가족들을 만나고 싶다. 아직 그대로 있을 내 방에 가고 싶다. 오래 된 서랍과 책장을 뒤지고 싶다. 졸업앨범을 보며 옛 추억에 잠기고 싶다. 동네 마트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 가을 하늘을 보며 보름달을 찾고 싶다. 갈비와 굴전과 꼬막을 먹고 싶다. 밤늦도록 같이 축구를 보고 싶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줄지 않는 명절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다.


나도 남들처럼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고 싶다. 집에만 갇혀있는 건 이제 좀 많이 지겹다.

  내 몸은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고 있을까? 내년 설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내년 추석까지는 협조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내후년 설이라도 괜찮다. 언제라도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저 다 괜찮다. 고향의 이정표만 봐도 가슴이 설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이제 내가 다시 광주IC를 지나게 되면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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