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만 일하는 창작자이지만 나름의 루틴은 있다. 늦어도 오전 10시까지는 기상 미션을 완료한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이불을 완전히 펼쳐 자리를 정리하고 가습기를 씻어 베란다에 말린다. 그리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아침 약을 먹은 뒤 2번 방으로 간다.
오늘 할 일을 대충 스캔한 뒤 하고 싶은 일부터 시작한다. 주로 어제 쓴 글을 이어 쓰거나 고치는 일이다. 삼십 분 타이머를 맞추고 타이머가 울리면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난다. 스트레칭을 하든 집안을 걷든 무조건 움직인다.
그러고 나면 점심 먹을 시간이 된다. 반찬을 사러 나갈 계획이라면 조금 더 서둘러 11시 반쯤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니라면 12시에 점심 준비를 한다. 간단히 차려서 먹고 치운다.
점심을 먹은 후에 할 일은 작업, 독서, 산책이 있는데 순서는 매번 다르다.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부터는 무조건 그날 중 최고 기온일 때 나간다. 그래서 작업을 먼저 하고 나가기도, 밥을 먹고 산책을 먼저 하고 와서 글을 쓰기도 한다. 산책을 하고 글쓰기도 한두 번 했다면 그날의 할 일은 할 만큼 한 것이 된다. 나머지는 자유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후 너 다섯 시부터는 그냥 책을 보거나 휴대폰을 보며 놀거나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한다. 리클라이너에 기대 편히 쉰다.
이것이 나의 평일 루틴이다. 루틴이라기엔 많이 헐렁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다시 1번 방 침대에 눕지 않는 점도 그렇다. 어떤 날은 저녁이 되기 전엔 아예 1번 방엔 들어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단 주말에는 침대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침대에 좀 더 오래 붙어있고 싶다. 열두 시간 후까지 침대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글쓰기 작업도 그렇다. 주말은 조금 쉬고 싶다. 글쓰기에 평일 주말이 어디 있겠냐만은 내 일상에선 선을 그어주고 싶다. 주말엔 글 안 쓰고 쉬어도 돼.라고. 내가 나에게 허용해주면 왠지 나는 안전해진다. 주말은 보너스로 생긴 날 같으므로 혹시나 주말에 글을 쓴다면 그건 그냥 공짜로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안 써도 그만, 쓰면 땡큐다.
그렇게 나는 잠에서 깨고 아침까지 먹었는데도 침대에서 등을 떼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쓰고 있는 글은 98% 마무리했다. 사실 올해는 손을 떼고 있어도 될 정도다. 그럼 이제 뭘 하지? 왜 오늘 같은 날 잠까지 일찍 깨서 심심한 거지? 두 번째 책은 뭘로 기획하지…? (아무도 내준다는 소리는 안 했다)
새벽에 자주 깨서 잠이 부족하나 생각이 많아 잠에 들진 않는다. 시간은 많으나 주말이라 루틴에 맞춰 살고 싶진 않다. 아니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책을 읽어볼까. 아니 눈을 뜨고 싶지 않아. 잠을 자볼까. 아니 잠에 들지 않아. 글을 써볼까. 아니 의자에 앉고 싶지 않아. 티브이를 봐볼까. 아니 머리가 아플 것 같아.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 이제 겨우 오전을 절반 보냈다. 이불 정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루틴을 깨트렸다. 남은 오늘 하루는 뭘 하나. 뭐가 됐든 착실하게는 살지 않을 것이다. 주말에는 루틴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