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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Oct 18. 2022

가을 단상

2022 가을

가을을 일 년 동안 기다렸는데 날이 추워지는 건 금방이다. 이러다 금세 겨울이 올까 두렵다.

  작년과 비슷하게 시월의 중간에 보일러를 처음 틀었다. 냉방과 난방에서 자유로운 시기는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짝사랑인 것 같다. 혼자서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애태우다가 시간이 다 간다. 마음을 다시 돌려받을 시간은 충분치 않다. 가을은 잠깐 얼굴만 내비쳤다가 차가운 바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예쁜 옷은 모두 가을 옷이지만 언젠가부터 가을 옷은 살 필요가 없게 됐다. 겨울 옷을 입게 되는 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산 내가 좋아하는 가을 옷들을 버리진 않았다. 여전히 그 옷들을 보면 티셔츠에 재킷이 어울리는 가을을 그리워한다. 그런 가을이 아주 짧게만 왔다 갈 뿐이다.


올 가을은 아프느라 시간이 다 가버렸다. 가을의 시작쯤엔 산책시간을 좀 늘릴 수 있었는데 한 겹에서 1.5겹 날씨쯤이 되었을 때는 코로나에 걸려 집안에만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 집에만 있는 사이 다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왔을 땐 보일러를 틀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고만 싶은 마음이었다. 겨울 이불을 꺼낸 건 작년보다 몇 주 더 일렀다. 포근한 이불에 싸여 뜨끈한 방 안에 온종일 머물렀다.


아침에 베란다 창문을 열지 말지 고민을 하게 됐다. 지금 기온이 식물에겐 너무 낮은 게 아닐까? 나무는 대답을 할 수 없으니 혼자서 고민하다가 햇빛이 드는 낮에만 창문을 조금 열어주었다. 여름 내내 무성하게 잎을 내던 나무를 바라보며 완연한 겨울이 오기 전에 새 잎을 하나만 더 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겨울이 오면 얼음이라도 돼 버린 듯 몇 개월 동안 새순을 하나도 내주지 않는 것을 안다. 지난겨울에도 그렇게 반년 정도를 보냈으니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잎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요새는 몇 년 전 옷을 정리할 때 기부해버린 트렌치코트 하나가 자꾸 생각난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에 샀던 옷인데 재질이 좋았고 안쪽에 탈부착 가능한 얇은 패딩 조끼가 덧대어져 있어 시월에서 십일월까지도 입을 수 있었다. 옷을 정리하던 3년 전의 나는 너무 극단적이었다.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됐으니 그 옷도 입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트렌치코트는 많으니 그거 하나쯤은 괜찮다는 생각, 그리고 앞으로도 다른 트렌치코트는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후 아무리 찾아도 비슷한 옷은 발견하지 못했다. 무겁지 않고 보온성도 좋아 실용적이었던 그 옷 만한 옷이 보이질 않는다. 나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그 옷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한들 뭐 어쩌나. 옷은 내 손을 떠났다.


다시 그 브랜드에서 비슷한 옷을 내주길 기대할 수 있다. 지난 3년간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래에 만들 수도 있으니 기다려볼 수 있다. 나오지 않는다면 뭐 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날씨는 점점 트렌치코트를 입기 어려운 날씨로 변해가고 있으니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한 건 트렌치코트보단 겨울을 날 수 있는 가볍고 보온성이 좋은 옷들인 것 같다.


가을은 화살처럼 짧지만 매번 가을에 대한 글을 쓰게 된다. 내가 가을을 짝사랑하기 때문이다. 가을은 내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상관없다. 내 마음을 받아줄 거라면 지금 그대로 멈춰 서서 두 달쯤 머물러 주면 좋겠다. 겨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남은 올해를 채워주면 좋겠다. 하지만 가을은 그럴 마음이 없겠지.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듯.

  가을은 지나가고 아침 공기는 겨울의 기억을 되살린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가을을 후회 없이 사랑해야 한다. 가을이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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