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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Nov 10. 2022

처음 달리기를 한 날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날의 기온을 확인한다. 요새는 날이 추워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하루  가장 따뜻한  산책을 나간다. 잠에서   눈으로 산책 나갈 시간을 결정한다. 시월 중순부턴 항상 하루  기온이 가장 높을  걸어왔다. 하루하루 따뜻함이 사라지는  아쉽다. 어느 순간 10도가 넘는 날씨도 감사하게  날이 있을 테니 11월이면 아직 열심히 걸어야 한다.


요새는 써야 하는 원고를 다 써버려서 한가하다. 근 세 달 동안은 원고에만 매여 살았고, 그 이전에도 그걸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살아서 몇 년을 글에만 매여 있었던 것 같은데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해 버리니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하면서도 불안해하고 걱정만 많았는데 그러는 사이에 어느새 고비를 다 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내년에 써야 할 글들이 있는데 아직 내년이 오지 않아서 지금 할 일은 없다.


할 일이 없다. 세상에, 할 일이 없다니. 나는 그래서 요새 매일 아침 그날의 기온을 체크하는 일이나 그날의 운세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산책을 나가면 많은 선배님들이 이미 거리를 채우고 계신다. 선배님들이란 인생의 선배님들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나가는 시간대에 활동하시는 분들은 주로 7-80대 분들이다. 하루 중 가장 햇볕이 좋은 때 밖에 나오시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분들이나 나나 그 시간에 바깥에 나가는 이유는 같다. 선배님들은 느리지만 길게 걷는다. 아주 오래오래 걷는다. 내가 나가떨어져서 집에 갈 때까지 천년만년 트랙을 도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면 적절한 방한장비를 하나씩 추가하신다. 나는 그분들을 보며 어떤 장비가 산책에 유용할지 엿보기도 한다.


오늘은 달리기를 처음으로 시도해본 날이었다. 달리기를 왜 했냐 하면,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들일 시간이 줄어 시간이 팽팽 남아돌고 나는 체력을 찾고 싶었다. 몸이 나아지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루에 3-40분 걸어서는 건강에 가닿는데 오백 년은 걸릴 것 같았다. 한 번 달려볼까?


달리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3년 전에 한 번 시도해봤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통증이 더 있던 때였고, 몸이 더 덜거덕 거리던 때였는데 내 몸이 낫기 위해 뭘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걷다가, 걷는 게 답답해 뛰어 버렸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열 번도 시도하지 못하고 끝났다. 하지만 그때의 시도로 러닝복과 겨울 러닝 장비가 남았다. 달리기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몇 시간 동안 달리기 전후 스트레칭 영상과 겨울철 러닝 복장 관련 글을 읽었다. 달리기를 할지 말지 고민했지만 하기로 결정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이번 주 날씨가 다행히 아직 최고기온이 16도 이상이기에 너무 춥지 않을 때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늘은 새로운 장소로 갔다. 아파트 주변은 달리기를 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많고 고양이도 튀어나오고 선배님들도 갑자기 튀어나오신다. 그래서 걸어서 8분 거리에 있는 예전에 운동장으로 쓰이던 곳에 갔다. 트랙이 있었지만 모두 떼어내 그냥 시멘트만 남은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곳을 동그랗게 돌고 있었다. 역시나 7-80대 선배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전날 영상에서 봤던 스트레칭을 몇 가지 하고 신발끈도 조절하고 조금씩 뛰어보면서 난리법석을 떨었다. 평화로운 경기장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해놓고 1킬로미터도 못 뛰면 큰일인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 창피하기 때문이다. 젊은 애가 와서 러닝 장비를 다 갖추고 헛둘헛둘 거리다가 몇 바퀴 뛰지도 못하고 자빠지는 꼴은 너무 우스울 것 같았다.


후아 후아. 달리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도 할 수 있어. 스마트워치의 시작을 누르고 트랙을 뛰기 시작했다. 씁씁 후후 씁씁 후후 헉 근데 왜 벌써 이렇게 힘들지?


달리기는 너무 힘들었다. 생각한 것보다 더 힘들었다. 몇 분을 뛰었는 질 보고 싶어 워치를 보면 워치는 뛴 거리만 표시해서 내가 뛴 시간은 볼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숨은 너무 차고 발바닥은 또 어찌나 아픈지! 달리기 하는 영상 속 사람들은 세상 상쾌하게 뛰던데 나는 하나도 상쾌하지 않았다.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뛰는 거야!


그래서 몇 번을 멈추고 다시 뛰고 다시 멈추고 걷다가 또 뛰었다. 정말 500미터쯤에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운동장에 있는 선배님들에게 왠지 부끄러워서, 내가 내 기록을 알고 싶어서, 1킬로미터는 채웠다. 기록은 10분. 1킬로미터에 10분이면 그냥 걸은 거 아닌가?


달리기, 첫 번째 시도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한쪽 의자에 앉아 기억 속에 남은 러닝 후 스트레칭을 하며, 겨우 이 정도 달리기를 하고도 과연 스트레칭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과연 스트레칭을 할 자격이 있는가? 찬 바람이 부는데 휴지를 가져오지 않아 자꾸 코를 훌쩍거렸다. 다음번에는 꼭 휴지를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이 있다는 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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