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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 Dec 01. 2022

남편은 자기 이야기를 책에 쓰는 것이 싫다고 했다

나는 우리의 결혼 이야기를 써서 책에 넣겠다고 했다. 낮에 쓴 초고를 읽어보라며 건네니 남편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도망가버렸다.

‘어보 왜 그래?!’

남편은 침대에 가 눕더니 이불을 덮고 숨었다. 그러더니 책에 자기 이야기는 안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뭐? 어보 이미 다른 글에도 다 들어갔어. 근데 왜 갑자기 싫다는 거야? 어보 왜 싫어? 이유를 말해 봐!’


남편은 대답을 잘하지 못하고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계속 할 말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그냥 잠깐 등장하는 건 괜찮은데 이렇게 완전 내가 중심이 되는 건 별론 거 같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싫은데! 어보 민망해? 부담스러워? 어보 창피해?’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으나 왠지 글로라도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남편에게 말했다.

‘어보 나는 그럼 책에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게 싫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또 글로 쓸 거야! 흥!’


그래서 이렇게 글로 쓰고 있다. 남편은 이름 한 자 공개하지도 않을 거면서 뭐가 민망하다는 건지. 나는 책을 내면 이름도 공개하게 될 건데 말이다. 아마도 이것은 관종이냐 아니냐의 차이일까?


작가 강원국은 일찍이 ‘글 쓰는 사람은 모두 관종이다’라고 말했다. 관종이 썩 기분이 좋은 표현은 아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혼자만 보는 일기장이 아니고서야 공개된 곳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그 글을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글이 관심을 받길 바란다. 뼛속까지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글로 어떤 얘기를 해도 별 상관이 없고 남편은 등장인물로만 나와도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글로 관심을 받고 싶은 욕심은 어쩐지 집착으로 이어진다. 브런치에 글이라도 올린 날이면 수시로 접속하여 라이킷 수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라이킷 수의 많고 적음이 그 글이 얼마나 좋은 글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단 많으면 기분이 좋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수치에도 못 미치는 글을 보면 왠지 풀이 죽는다. 왜지? 내가 뭘 잘못했지? 이 글이 그렇게 별론가…? 글을 자꾸 다시 보며 이리 뜯어보고 조리 뜯어보며 문제점을 찾아내려 한다.


하지만 브런치 생활 3년, 라이킷 수는 결국엔 다 대동소이하고 글이 어느 타이밍에 사람들에게 얼마나 노출되는지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크게 놀랄 만큼 많은 라이킷 수는 받아본 적이 없으니 그냥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은 비슷한 수겠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않으려 하는 거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다.)


남편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에 동의했다. 책에 싣는 것도 동의했다. 주인공이 되는 것도 잠깐 등장하는 것도 모두 오케이 했다. 뭐가 됐든 다 갖다 써도 된다고 했다. 내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면 절대 나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말마따나 이름의 초성 하나 등장하지 않는데 그가 왜 창피할 일인가! 나는 이름 석자를 공개하고도 글 수십 개를 쓰고 앞으로도 또 수백 개의 글을 써나갈 텐데 말이다. 역시나 이것은 비 관종과 관종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글로 이름을 알리고 싶고 남편은 어디에도 이름을 알리고 싶지 않다. 내가 말하지만 않는다면 남편에 대해서 알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남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남편과 내가 어떻게 만나 결혼을 했는지 우리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뿐이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글로 쓰는 건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게 돼도 괜찮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게 더 속상한 일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마구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다니 아무래도 나는 관종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은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쭉 나의 글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순응해야 할 것 같다. 피할 방법은 없다. 내가 글로 써버리면 그만이다. 이렇게 남편이 등장한 글이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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