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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통증이 찾아왔다

통증의 시작

by 물고기

시작은 사소했다. 나는 침대 옆 책장에 기대 반대편 대각선에 있는 티비를 보는 일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몸을 오른쪽으로 기댄 채 시간을 보내게 됐다. 좋지 않은 자세였지만 집에서 편히 구겨져 있는 자세가 으레 그렇듯 크게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티비를 보고 책을 읽고 휴대폰을 사용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니 오른쪽 뒷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오른쪽을 많이 바라보았으니 오른쪽 목이 아프게 된 거겠지.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해결도 단순할 거라 생각했다.


2017년 여름, 처음엔 그렇게 별 특별하지 않은 통증이 시작되었다. 당장 티비를 침대에서 정면에 보이는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저것 때문에 목이 아파졌다는 사실이 싫어 예전처럼 자주 보게 되지는 않았다. 마사지볼을 사용해 통증 부위를 이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목 스트레칭도 자주 했다. 목뒤에서 시작된 통증은 어느새 머리 뒷골을 타고 이마까지 연결되었다. 두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두통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곤 했지만, 이번에는 명확하게 통증이 지나온 길이 느껴졌다. 두통이 생기며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하루 종일 성가신 통증에 시달리자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한 통증의학과를 찾았다. 의사는 목이 아프다는 나의 말을 듣고 목 한 번 만져보지 않고 비싼 주사를 처방했다. 무슨 주사인지 물었지만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다음번 진료 때 특별히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자 의사는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러 오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이 오히려 통증을 더 악화시켜서 그 병원은 가지 않았다. 대신 자세 교정이 도움이 될까 싶어 필라테스 1회 체험 강습을 신청했다. 책과 관련 자료를 많이 읽어 관심이 많았던 만큼 강사 분에게 바른 자세, 요추 전만, 골반의 정렬 등에 대해 질문했는데 그 자신도 머릿속에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듯 말끝을 자꾸 흐렸다. 나름 필라테스가 답일 거라 생각해 간 곳이었는데 그곳엔 길이 없을 것 같아 등록하지 않았다. 대신 자세 교정에 좋다 하여 서너 해 전 취미로 배운 적이 있었던 발레를 다시 수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레는 채 한 달도 제대로 나가지 못한 채 중단해야 했다.


당시 목의 통증을 제외하고도 이상하리만큼 나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10월에는 2주가 넘도록 지독한 두통에 시달려 새벽에 응급실에 가기도 하고 어지럼 증세가 사라지지 않아 병가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메니에르 증후군 의증으로 여러 병원에 갔지만 가는 병원마다 진단이 달라졌고 대학병원 신경과까지 가 머리통을 잡히고 양쪽으로 마구 흔들어질 땐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올 곳이 여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날들이었다. 두통으로 학교를 나가기도 어려워지자 당연히 발레는 중단해야 했다. 목의 경직감이 점점 불편해져 발레 동작을 하기도 힘들어지던 때였다. 11월엔 한 달 내내 몸살감기가 낫지 않았고 그즈음 목의 통증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목을 편안하게 받쳐주지만 너무 높지는 않은 완벽한 베개를 찾기 위해 수십만 원을 썼고, 추석 고향 방문이나 출장으로 집을 떠나야 할 때면 베개와 마사지볼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녔다. 그 베개가 아니면 하루도 잘 수 없을 정도로 매일 뒷목에 표현할 수 없는 불쾌한 불편감이 느껴졌다.


분명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만 갔다. 그해 12월에는 목의 통증이 뒷목을 넘어서 사방으로 퍼졌고 뻣뻣함과 근육의 당김이 심해졌다. 목의 가동범위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목을 일정 방향으로 돌리는 것도 어려워졌다. 본격적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흔한 목디스크 탈출증은 아닐까 싶어 목 MRI를 찍어보았지만 나의 MRI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아무 문제도 없으니 다행이지 않나요?” 나의 MRI를 판독해준 의사는 걱정할 게 무엇이냐는 듯 심플하게 말했다. 하지만 통증이 있는데 객관적인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건 내겐 전혀 다행이 아니었다. 나의 통증을 증명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분명 아픈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듣게 되는 건 아닐까? 그때부터 나는 왠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의 안도감은 아이러니하게도 실제로 몸에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때 온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트레스 때문이라거나 신경성, 심인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끝없는 자기 성찰과 후회의 늪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빠져나올 수 없는 그 늪이 내 발 앞에 성큼 다가온 것만 같았다.


상태가 그 정도쯤 악화되자 대학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A대 마취통증의학과에서 몇 주간 치료를 받았으나 비싼 주사들은 마취약이 효과를 보이는 시간만큼만 유효했다. 대여섯 시간은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으나 그 후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뿐 문제 부위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었다. 방향을 틀어 A대 재활의학과에 가보았다. 그즈음 한 재활의학과 의사가 집필해 크게 인기를 얻은 목 관련 서적을 읽었고 비슷한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진료 날, 그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에 책의 저자와 같은 학교 출신인 의사는 반색을 했고 진료실 분위기는 내내 화기애애했다. 그는 내 증상을 듣고 근육의 뭉친 부위를 주사로 부수는 TPI(Trigger Point Injection)가 맞는 치료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빠르게 주사가 준비됐고 그는 트리거 포인트를 찾아 주삿바늘을 넣었다 뺐다를 여러 번 반복하며 뭉친 근육을 부쉈다. 순간적으로 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팠지만 낫기만 한다면야 몇 번이고 더 맞을 수 있었다.


*TPI (Trigger Point Injection : 통증유발점 주사 -근막통증증후군을 유발하는 근육 내 통증 유발점을 찾아 주사하는 치료법. 이러한 통증 유발점은 흔히 Taut band라고 알려진 딱딱하고 긴장된 끈 모양의 부위가 존재하는데 이 부위를 바늘로 찌르고 약물을 주입하여 해소시키는 치료를 의미한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


그 이후 다른 곳에도 TPI를 맞으며 알게 된 점은, 그 주사는 주사 자체의 통증이 굉장히 센 편이라 그 통증이 사라지는 데만도 일주일 정도는 걸린다는 것이었다. 주사를 맞은 부위가 일주일 내내 얻어맞은 듯 묵직하니, 원래 통증 부위의 통증이 경감되었는지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나아졌더라도 주사를 맞아 새로운 통증이 생겼으니 나아졌다는 것을 느끼기가 어려운 편이었다.

TPI를 처음 맞아본 나로서는 주사를 맞고서 점점 더 통점이 늘어나고 주사를 맞은 부위의 붓기가 일주일 동안 빠지지 않는 것이 불안했다. 일주일 후 진료 예약 날 병원에 가서 증상을 그대로 말하니 그는 그럼 이제 그만 오라고 말했다.


“네?”

나는 너무 놀라 되물었다.


“저는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했고, 그게 효과가 없으니 더 할 수 있는 게 없죠. 그럼 그 책 쓰신 분한테 직접 가보시든가요.”


의사가 환자를 이렇게 포기할 수도 있는 건가? 머리를 벽돌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나는 ‘원래 주사를 맞은 후 통증이 늘어나거나 주사 자체의 통증이 가라앉는 시간이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으니 좀 더 기다려봅시다’ 라거나 ‘그 주사를 맞고 호전이 없었으니 이번엔 이렇게 해봅시다’라는 식의 전개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 그렇게 쉽게 내쳐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지난 치료에 대한 설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넓은 진료실에 감도는 차가운 공기와 묘하게 고압적인 표정, 어서 나가라는 듯 몸을 문 쪽으로 반쯤 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던 간호사의 모습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나는 치료에 딱히 반응하지도 않고 이렇다 할 해결책도 없는 애매한 통증 문제를 들고 온 골칫덩어리 환자일 뿐이었다. 그는 나를 환자로 받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서 진료실 문을 나가 다신 찾아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간단할 것 같았던 나의 문제가 복잡해지는 과정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병원에서 나온 나는 말 그대로 갈 곳을 잃었다. 멍하니 터덜터덜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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