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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이상은 없습니다

섬유근육통의 시작

by 물고기

2018년 2월의 첫째 날에는 B대 재활의학과 첫 진료예약이 있었다. 나는 6개월간의 과정을 A4용지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가져 갔고, 그는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통증 때문에 매 순간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고, 목을 뺐다가 다시 끼워 넣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땐 아직 농담을 할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 선생님, 포기하지만 말아주세요. 제가 진료 거부당해서 여기 온 거거든요

-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환자 분이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요.

나는 그의 왠지 모르게 친근한 인상과 다정하면서도 단호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B 대학병원에서 두 번의 치료를 받기까지는 그 전과 별 다른 차도가 없었다.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즈음부터 통증의 새로운 증상이 추가되었고, 범위가 점점 확산되어갔다.



첫 번째 악화가 2017년 12월이었다면 최종 악화, 그러니까 본격적인 섬유근육통의 증상 발현은 2018년 2월 6일이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전날인 5일이 2월 개학일이었다. 방학 동안 텅 비어있었던 학교는 온풍기를 아무리 틀어도 온종일 온기가 돌지 않았고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었다. 오른쪽 팔 전체가 저리고 당기는 느낌이 들었는데, 당시 병원기록을 보니 내가 ‘우측 팔을 떼어내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적혀있었다. (아마 실제로는 ‘팔을 뽑아버리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2월 6일 눈을 뜨니 달라진 세상이 눈앞에 있었다. 팔의 저림과 경직감에 팔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새로운 증상이 추가되었다. 실제로 만져서 뜨거운 것은 아닌데 속이 뜨겁고 불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 번째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나는 더 이상 농담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라도 그땐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가져온 휴지는 다 떨어져 가고 병원 공용 휴지는 너무 거친데 자꾸 눈물이 났다. 죽을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너무 불안했다. 이제 나의 몸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경계를 지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날 저녁부터는 팔 저림에 다리 저림까지 추가되었다. 허벅지부터 발바닥까지 뜨거움이 느껴졌고 누워있어도, 서있어도 온몸이 불편하고 괴로웠다. 또 그다음 날엔 엉덩이부터 발끝까지 저린 범위가 더 늘어났고, 밤이 되면 저림 증상이나 화끈거림, 찌릿함이 더 심해져서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몸 전체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후에 이것을 작열감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상황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학교 일에 관해서도 좀 골치가 아파졌다. 2월의 학교는 3월부터 시작되는 새 학기를 위해 모든 판을 새로 짜는 시기이다. 2월 5일 개학날 나는 자신 있게 업무분장 제1희망에 ‘1학년 담임’이라고 적어 제출했던 터였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갑자기 몸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담임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아픈 게 2월 안에 나을 수 있을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그때는 했었다) 업무분장 희망을 빨리 바꿔야 하나? 어떻게 하지?’이런 생각이 날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불안함은 커져만 갔다.


증상은 하루하루 눈덩이 불어나듯 늘어났고 나는 통증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금세 기진맥진해졌다. 머리에 피가 안 통하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항상 있었고 등, 날개뼈 부위의 경직과 통증도 심해졌다. 증상이 급격히 추가되어 병원 진료를 위해 매일 통증을 기록했다.

2018년 2월 10일, 2월 11일의 통증 일지


나는 당시 나을 수만 있다면 정년까지 교사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교사가 된 지 십 년이 넘도록 진로 고민을 하던 내가 이 말을 일기장에도 적고 오빠에게도 말했다. 엄청난 결심이었고 또 그만큼 통증이 싫었다. 또한 이 통증만 없었던 일만 되면 이제까지 살면서 아팠던 것을 모두 다시 겪어도 된다고도 생각했다.

당시 나의 일기와 오빠와의 카톡대화


2월 12일에 병원에 갔을 땐 나에게 섬유근육통 진단 설문지를 내밀었다. 섬유근육통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왠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18개의 통증점 중에 해당되는 곳을 표시하라는데 거의 대부분을 체크할 수밖에 없어서 하면서도 이건 무조건 고득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섬유근육통 환자는 50점 정도이며 중증의 경우는 70점 이상이라는데 그날 나의 점수는 79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단지 설문지일 뿐이라며 다른 가능성을 위해 모든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뼈스캔과 피검사를 예약했다.


그날은 집에 돌아와 머리를 단발로 짧게 잘랐다. 머리카락이 무거워 목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머리를 감는 것도 말리는 것도, 그냥 그 머리카락을 지탱하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집에서 1분 거리 미용실에 가서 30분을 앉아 기다리고, 또 30분을 앉아 머리를 잘랐다. 그 한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 근육의 경직, 뻣뻣함,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었다.


- 언니는 머리 왜 자르려고?

- 무거워서요.


힘겹게 약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 나의 통증을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19살에 고향을 떠난 후 처음으로 명절에 집에 내려가지 못했다. 잠시 앉아있는 것도 힘든 내가 장시간 이동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엄마, 나 집에 못 내려가

- 그래야, 그럼 엄마가 갈게. 가서 엄마랑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러 가자.

- 엄마, 나 이제 영화관에서 영화 못 봐.

- 그래야...

- 나 이제 그렇게 못 앉아 있어.


같이 영화를 볼 수 없다고 얘기하는데 너무 슬펐다. 나는 아프기 이전의 나의 삶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멀어진 것만 같았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온 엄마는 주로 말이 없으셨다. 아프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예전의 나를 가장 많이 아는 건 그녀이기에, 아픈 후 누워있기만 하는 나를 보고 가장 가슴이 아픈 것도 그녀였으리라.

엄마는 계속 방을 치우고 또 치웠고, 우리는 연휴 내내 올림픽 경기를 틀어놓았다. 별로 즐겁진 않았다.



뼈스캔 (bone scan) : 골절, 종양 발생 및 전이 여부, 감염 및 관절 질환의 범위와 중증도를 평가하는 핵의학 검사. 암의 뼈 전이가 있거나 골절, 인대나 힘줄 손상에 의한 뼈 자극, 기타 대사성 질환에 의한 뼈의 무기질 대사 변화, 관절질환 등에서 증가하게 되며, 이에 따라 뼈 스캔에서 높은 섭취 형태로 나타난다. (출처 : 서울대학교 병원 의학정보)


뼈스캔 검사는 오전 7시 40분까지 핵의학실(이름도 무시무시했다)에 가서 약물을 주입하고 4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검사였다. 오빠에게 뼈스캔을 받는다고 하니 약간 긴장하는 듯했지만 나는 여기서라도 뭔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날 점심으론 병원 앞에 있던 2층 국밥집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그리고 뼈스캔과, 모든 종류의 피검사. 그 모든 검사에서 의학적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두 달 전 경추 MRI 결과를 봤을 때와 비슷한 두려움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몸이 아픔에도 검사 상 아무 이상이 없을 때 환자가 가지게 되는 두려움. 나는 이제 신경성이나 심인성 질환을 의심받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의 통증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졌다. B 대학병원 의사는 다행히 나의 통증을 의심하지 않았고 약 처방을 여러 방면으로 바꿔보는 식으로 치료를 이어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통증에 쓸 수 있는 모든 약 : 뉴론틴, 익셀, 심발타, 리리카, 아이알코돈을 순차적, 복합적으로 복용했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으며, 마지막 마약성 패치가 부작용 때문에 실패로 끝나며 더 이상 시도해볼 수 있는 약이 없게 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총점 79.75점이라는 높은 점수의 섬유근육통 설문지 점수뿐이었다.

의사도 나도 말수가 많이 줄었다.

그 시기 나는 섬유근육통,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며 점점 불안감이 커져갔고, 특히 신동욱 배우의 사례를 보며 자꾸 눈물이 났다.



다시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2017년~2018년 2월까지 통증의 3단계 악화 요약. 당시는 증상의 첫 발현이라 상세히 기록하였으며, 그 이후로는 이렇게까지 기록하지 않는다.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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