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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근육통을 진단받다

by 물고기

처음엔 오른쪽 목이 아팠다. 통증이 온몸으로 퍼지며 섬유근육통이란 진단명을 받게 된 것은 반 년 후의 일이었다. 나쁜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내 몸은 순차적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목을 치료하러 갔다 온몸에 주사를 맞게 되고, 엑스레이와 MRI를 찍다 핵의학 검사를 받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한 후 받아 든 결과지는 이상 없음. 모든 것이 이상했다.


커다란 본스캔 기계에 들어갈 때 나는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상이 발견되길 바랐다. 엑스레이, CT, MRI, 피검사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데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괴롭고 고통스럽게 아파본 적이 없었다. 나는 제발 나의 통증을 공식적으로 증명 받을 수 있길 바랐다. 수많은 항목 중에 단 하나라도 정상 수치를 벗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든 것이 정상. 내가 이렇게 아픈데 아무 이상도 없다니, 나는 결과를 듣고 망연자실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과학기술이 이렇게나 발달했는데도 나의 병명을 진단하는 데 최종적으로 사용된 것은 종이설문지였다. 섬유근육통 설문지에는 몸의 18곳 중 11곳 이상에 통증이 있고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면 섬유근육통으로 진단한다는 진단 기준이 적혀있었다. 뻣뻣하고 경직되고 저리고 화끈거리는 느낌을 모두 통증으로 봐야 하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사람 몸이 그려진 그림에 빈 곳이 없을 만큼 표시했다. 뻣뻣함과 통증이 주로 있는 부위는 오른쪽 상체였지만 저리는 느낌은 한 부분을 특정할 수 없이 온몸을 관통했다. 100점 만점에 79점. 의사와 나는 그 결과지를 두고 별말이 없었고 얼마 후 그는 나의 치료를 중단했다. 더 이상 그곳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병원을 나오며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오빠에게 섬유근육통 설문지 결과에 대해 말하니 ‘섬유근육통이면 쉽지 않은데.’라고 했다. 병원에서 의사는 신뢰도가 떨어지는 검사라고 했다. 섬유근육통을 인터넷에 검색하니 설명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나도 내가 그것이 아니길 바랐다. 그래서 나는 그 결과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믿고, 섬유근육통에 대해 파헤치다 보면 내가 너무 지칠 것 같았다. 두려웠다.


섬유근육통 카페에 가입했다. 글을 읽으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니 섬유근육통이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주로 괴로워져서 자주 들어가진 않았다.


의학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으나 극심한 통증과 전신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 의료계에서는 그것을 섬유근육통이라는 카테고리에 넣는다. 한 달 여의 검사 끝에 그럴듯한 병명을 얻었지만, 그 병명은 통증의 원인과 해결법을 알 수 없다는 의미라서 나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이해받을 수 없다고 느꼈다. 섬유근육통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나의 고통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아보였다.

나도 평생 처음 들어보는 이 병명은,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수백 번이고 설명해야 할 것만 같았다. 섬유근육통만 아니라면, 원인도 해결법도 명확한 다른 어떤 질병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후로도 나는 검사 상 이상이 있는 확실한 병명을 찾아다녔다. 몇 달 후 손발이 전보다 더 저려서 가까운 신경과에 갔다. 손과 발끝에 장치를 끼우고 검사를 받는 동안 일말의 기대를 했다. 이번엔 이상 수치가 있는 확실한 진단명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또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실망했다. 그동안의 병력을 말했고, 의사는 섬유근육통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진단이었다. 흔한 병이고, 손발이 저리는 것도 그것 때문일 거라고 했다. 그러면 섬유근육통으로 학교를 휴직할 수 있는 진단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지 묻자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섬유근육통은 완치가 없기 때문에 기간을 명시하는 진단서를 쓸 수 없습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아프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 많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일은 쉴 수가 없는 거예요?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 그렇구나, 섬유근육통은 힘들고 괴로운 거지만 치료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구나. 서러움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어느 겨울엔 독감에 걸린 듯한 몸살 상태가 2주 넘게 지속되었다. 동네 내과에서 시작하여 대학병원 감염내과, 류마티스내과까지 가서 피를 8통이나 뽑았지만 결국 내가 들은 말은 검사 상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염증 수치도 정상이고 아무 이상도 없어요. 섬유근육통입니다.”

이미 여러 번 들어 익숙한 그 이름을 또 들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아파도 결국엔 섬유근육통이란 말만 듣게 되는 걸까. 나는 매번 내 몸의 이상함을 확인받을 뿐이었다.


손이 저려 로컬 류마티스내과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피를 뽑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이상 수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손 저림도 모두 섬유근육통 때문이라고 말했다. 손을 적게 쓰고 자주 쉬라고 말했다.


이렇게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증상을 설명할 수 있는 건 결국 이것뿐인가. 섬유근육통 진단을 몇 번이고 받게 되자 결국 그 어색한 병명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섬유근육통은 속이 텅 빈 병명 같았다. ‘당신이 아픈 이유와 해결법을 모르겠습니다’라는 뜻이고 실제로도 대부분 약을 처방받지 않고 병원을 나왔다. 나아질 방법을 알 수 없다는 사실만 종종 확인받았다.




섬유근육통 관련 원서와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절반쯤, 그리고 논문 몇 개를 읽다 관련 문헌 읽기를 멈추었다. 책과 논문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섬유근육통의 발생 기전은 이러하다.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계가 지나치게 항진되어 스트레스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태라는 것이다. 모든 자극을 스트레스 요인으로 받아들이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라는데 문제는 왜 그런 오류가 발생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에 있었다. 복잡한 표와 차트를 잔뜩 그려놓아도, 시상하부와 각종 호르몬 이름을 들어 설명해놓아도, 모든 문헌의 결론은 ‘하지만 왜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지는 알 수 없다.’로 끝이 났다. 한 논문에서는 섬유근육통이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 복합 시스템의 실패’라고 결론 내렸다. 그냥 실패했다는 것이다. 원인도 해결법도 모르겠고 그냥 이건 몸의 실패야.

그래서 더 이상 관련 문헌은 읽지 않는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섬유근육통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몸의 실패라는 말은 확실히 맞는 것 같다. 나는 실패한 몸으로 수년을 헤쳐 왔다. 적대적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한 몸으로 살아가는 일은 녹록치 않았다. 넘어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지며 매 순간을 이를 악물고 버텨왔다. 단 한 순간이라도 내가 나를 포기했다면 다다르지 못했을 오늘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은 나를 신기하고 대견하게 생각한다. 거의 매일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 걸을 뿐이었다.


몸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신은 실패하지 않았다.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나간다. 비록 느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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