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생충이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화이트 타이거'는 한국에서 인도 기생충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소개되었다, 당시에 기생충이 워낙 유명하기도 했지만, 운전기사 주인공과 냄새와 계급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 내용을 보고 기생충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실제로 카스트 제도가 있는 인도의 계급 문제를 그린 화이트 타이거는 계급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룬 기생충과 달리 정면으로 가져와 풍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냄새의 근원인 '빤(PAAN)'이 있다.
빤은 인도의 일반적인 기호식품으로 씹는담배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빈랑 열매나 빈랑 잎을 향신료와 함께 씹는 기호식품인데 인도에서는 대중적인 기호 식품이다. 자극적인 청량감이 특징으로 씹고 나면 목캔디 같은 화한 맛이 입에 남는다고 한다. 껌처럼 씹고 남은 잎사귀는 뱉어 내는데,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나 뱉는 씹다 남은 빤을 보고 '인도 사람들은 입에 상처가 많은지 피가 섞인 침을 뱉는다'라고 오해하는 한국인 여행자의 경험담을 들을 적도 있다.
우리에게 낯설기는 하지만, 이 빈랑을 씹는 문화는 대만부터 마다가스카르까지 널리 퍼진 보편적인 문화로 빈랑(檳榔)에 손님 빈(檳)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것처럼 동남아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꼭 대접하는 기호식품이었다.
화이트 타이거 영화 안에서 이 빤은 다양한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 빤의 존재를 알고 영화를 다시 보니 새로운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낯선 문화라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로 어떻게 등장하는지 알기 어렵기도 하다.
장학사가 주인공 발람의 뛰어남을 발견하고 '위대한 사회주의자'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면서 델리로의 유학을 추천하지만, 결국 발람은 유학을 가지 못하고 운전기사가 되어 고용된 지주의 저택에서 그 '위대한 사회주의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지주에게 탈세를 눈감아 준 대신 거액의 정치자금을 요구하고 지주가 그렇게 많은 돈은 어렵다고 하자 그럼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며 씹던 빤을 테이블 위에 뱉고 떠난다.
'위대한 사회주의자'는 지주가 다스리는 발람 고향의 유력 정치인이다. 인도에서는 카스트에 대한 반발로 인해 공산당과 사회주의 정당의 세력이 강한 편인데, 그녀의 정치적 권력은 발람 같은 낮은 카스트에게서 나오지만 그 권력은 지주의 탈세를 돕고 리베이트를 받는데 쓰인다. 지주 앞에서 씹던 빤을 뱉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권력을 나타낸다.
인도에서 일반적으로 여성이 빤을 씹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지주 앞에서 빤을 씹는 것 자체가 그녀의 권력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영화 안에서 말린 빤은 두 번 등장하는데, 한 번은 발람의 급여를 가져오라고 할머니가 보낸 발람의 형과 지주의 저택 문을 사이에 두고 만났을 때 나눠 씹는 장면이고, 또 한 번은 발람이 계략으로 선배 무슬림 운전수를 내쫓은 다음 승리의 축배를 들 듯이 씹는 장면이다. 발람이 자신이 획득한 자그마한 권력을 실감하는 장면에서 빤이 등장한다.
발람의 주인인 아쇽의 부인인 핑키는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이민자, 부모가 잡화점에서 맥주, 빤, 포르노를 팔아 자신을 키웠다며 발람을 맥주, 빤, 포르노의 세계에서 고기를 먹지 않고 입냄새가 나지 않는 그들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정말 분노의 양치질을 하는 발람.
미국 물을 먹은 유학파인 지주의 아들인 아쇽과 그 부인인 핑키에 의해 카스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던 발람.
하지만 그 핑키에 의해 자신의 위치를 다시금 자각하게 되는 발람을 회유하기 위해 발람의 형은 '그 문서'에 지장을 찍기 전에 아주 호사스러운 빤을 씹게 해 준다. 빤을 끊고 자신의 카스트의 굴레를 벗어나려던 발람은 다시 빤을 씹으면서 카스트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빤의 의미를 알고 새로운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 이런 부분이 새로 눈에 들어오면서였다. 빤은 씹으면 입안이 개운해지지만 빤의 냄새가 입냄새의 원인이 되고, 그럼 또 빤을 씹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게다가 빤을 씹으면 빤의 붉은색이 이빨에 남아있기 마련이라 발람이 그렇게 분노의 양치질로 빤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던 것이다.
빤은 발람의 낮은 카스트, 그리고 냄새를 뜻하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전반부에 지주의 발을 씻기고 안마를 한 발람이 저택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거기에 있던 탈취제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서 도망치듯 두고 나온다. 바로 뒤에 발람이 봉급을 받는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게 무슨 뜻인지 잘 알 수 있다. 발람의 한 달 봉급인 3000루피 보다 훨씬 비싼 4300루피의 탈취제. 냄새를 지우기 위한 비용, 벗어나지 못하는 카스트.
이 영화는 그런 카스트의 '냄새'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람이 어떻게 카스트의 냄새에서 벗어나는지에 대한 내용이고,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하니 여기서 마무리를 짓는다. '인도 기생충'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좋은 영화니까.
빤에 집중에서 두 번째 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발람을 카스트의 굴레 밖으로 끌어내 줄 것 같던 미국물 먹은 아쇽과 핑키가 결국 자신들이 필요할 때 발람을 카스트로 짓누르는 부분이었다.
여담인데, 정말 기생충의 인기에 얹혀가려던 영화는 '마약 기생충'이다. 아니 제목이 마약 기생충이 뭐야... 예전만 못하긴 하지만 니콜라스 케이지 배우와 로렌스 피쉬번 배우가 나와 열연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값이 아깝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원제인 러닝 위드 더 데빌은 극 중에 등장하는 마약의 상표이면서 이 마약의 유통경로를 따라가면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르는지 보여주는 중의적으로 잘 지은 제목이라 더더욱 안타까운 번역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