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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Oct 05. 2023

7년간 하던 일을 멈췄습니다

자취와 '일'

출처 : pixabay
왜 거기로 갔어? 꿀 이래서!


신입사원으로 IT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2년 차쯤 되었을 때였다. 첫 회사는 기업 안에 속한 여러 회사에 파견을 나가서 IT 시스템을 운영해 주고 돈을 받는 곳이었다. 입사 동기들은 어느 회사에 파견이 돼야 성공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어느 회사 쪽으로 파견이 되어야 직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더라, 00 여기로 가야 이직이 쉽다더라 등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로 선택의 폭을 좁혀갔다.


나는 그 당시에 24살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하는 기술도 없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냥 적당히 다닐 수 없는 곳 없나?'라고 생각하던 중 퇴근길에 지나가던 안 친한 동기 한 명이 우연히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 00 여기 회사로 가면 진짜 꿀 이래. 일도 별로 없고 편하다던데. 밥도 맛있고. 나도 거기 쓰려고."


그걸 들은 내 심장이 어떻겠는가? 아무도 모르는 내부 정보를 알고 주식을 사는 것처럼 나의 마음은 콩닥콩닥 뛰었다. 바로 거기였다. 나는 그 정보만을 믿고 별생각 없이 그 회사를 담당하는 팀에 지원했다.


그렇게 그 팀에 2년간 있어보니 정말로 편하긴 했다. 그 동기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특별히 시스템에 큰 이슈도 없었고,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동기가 말해주지 않은 게 있었다. "거기 가면 성장하긴 어려워."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 미래의 나를 볼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좋든 실든 IT 회사에서 돈을 벌려면 기술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 직무는 하던 사람만 얇고 길게 하는 일이었다.

회사를 바꾸면 달라질까 해서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하지만 똑같은 업무를 하다 보니 더 크게 느꼈다. '더 나이가 들면 평생 직무를 못 바꿀 수도 있겠다.'


꿀이긴 했지만, 언제 사라질까 걱정되는 꿀단지였다.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선택한 꿀단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꿀을 버려보기로 결심했다.



출처 : pixabay
매일 4시간씩 교육을 듣는다고?


IT 직무 중에 '데이터 분석'이 하고 싶었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그만큼 시장의 규모도 커진 게 보였다. 온라인 교육을 몇 개 들어보니 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보였다. 그날로 국가에서 하는 인공지능이나 데이터 분석이란 단어가 들은 강의란 강의에 모조리 신청 버튼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할 만큼 공부를 했다. 자취를 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에서 2021년에 회사는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이건 기회다' 싶어서 온라인 라이브로 진행하는 데이터 분석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교육 시간은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을 듣는 수업이었다. 그걸 두 달 동안 들었다.


두 달이 지나고, 또 다른 수업을 신청했다. 그것도 두 달을 들었다.

그렇게 두 달, 네 달,, 거의 1년 동안 재택을 하며 집에서 데이터 분석 교육을 들은 것 같다.



지금 다시 공부할래?라고 하면 두 손 두 발 들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한 1 년이 참 즐거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었다. 누가 쉽다 하면 귀가 솔깃했다. 누가 어렵다고 하면 피하고만 싶었다. 그렇게 7년간 별생각 없이 일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가 해보고 싶은 직무가 생겼다. 내가 직접 꾸려나갈 꿀단지를 찾고 싶었다. 그럼 그 꿀단지가 나의 자산이 될 것 같았다.  


직무 공부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취 때문이었다. 만약 본가에 살았다면 부모님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밤 4시간씩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다른 직무로 바꾸겠다는 나를 철없는 직장인으로만 생각하셨을 것 같다. 가뜩이나 내가 어디로 튈까 걱정이 많으신데,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고 할까 봐 옆에서 계속 말리셨을 것 같다.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어떤 공부더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의 공간에서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새벽 1시쯤 공부를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의 쾌감이란.

하나하나씩 공부를 통해 성취해 가며 자취방은 나의 작은 우주 공간이 된 것 같았다. 자신감이 점점 상승했다.

'나 진짜 될 것 같아'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에요.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회사 내에서 팀을 옮길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그렇게 팀을 올기면 내가 하고 싶었던 데이터분석 업무를 할 수 있었다. 큰 기대감을 가지고 옮기고 싶은 팀에 지원서를 넣었다.


비가 세차게 오던 7월쯤이었을까, 팀장님이 오셔서 나름대로 작성한 이력서를 유심히 살펴보셨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교육을 많이 들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력이 얼마만큼 되는지 알려줄래요?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에요. 1을 주면 1.5는 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해요 저는."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에 나는 얼버부리며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제가 이건 당장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교육도 들어봤고 해서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팀장님의 마지막 말이 기억난다. "호기심으로 일을 해보고 싶어서 하는 건지, 진짜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일인지 고민해 보세요. 호기심으로 도전했다가 그만둔 사람이 많아요. 다시 생각해 보고 그래도 하고 싶으면 연락 주세요. 그때 정식 면접을 보겠습니다."


그 팀장님의 말은 전혀 틀린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직무를 바꿔서 도전해 보겠다고 이것저것 준비해 온 나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 정도 상처에는 무뎌졌다고 생각헀지만, 상처는 언제나 새롭게 마음을 후벼 팠다. 그날 진짜 오랜만에 집에 가서 엉엉 울었다. 저절로 이 말이 나왔다.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

                    


출처 : pixabay
모든 선택은 적극적으로 하자. 그게 설령 틀릴지라도.

첫 번째 면접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나는 두 번째 팀에 지원서를 넣었다. 눈물이 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바꾸기로 선택하고 도전한 것이니깐. 꼭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두 번째 팀의 팀장님과 면담을 하는데, 생각보다 내가 공부한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셨다.

" 이렇게 공부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네요. 여기 와서도 이렇게 도전적으로 일해주세요. 적극적으로 공부했던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드네요."

" 네 꼭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는 7년 동안 하던 첫 직무를 그만두고, 새로운 팀으로 옮겨 데이터 분석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그때부터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새로운 직무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7년 동안 했던 업무 스타일과는 완전히 달랐다. 표준화되고 명확한 전의 업무와는 달리, 고민을 많이 해야 했고 그만큼 머리가 아펐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일하던 그 달던 꿀단지가 그리워질 때도 있었다.


실수를 할 때도 많았다. 신입사원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지만 꿀단지 안에 살던 나는 부족한 게 너무나 많았다. 제대로 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내가 지금까지 7년 동안 뭘 했지?'라는 생각에 괴로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대충 누가 좋다길래 하는 것 말고 내가 해보고 싶어서 한 선택은 힘이 있다. 그 선택을 믿고 나가면 분명 문제는 해결된다.


해보고 싶은 걸 스스로 찾고, 자취방에서 머리를 싸매고 조금씩 이루던 그 성취감을 머리가 기억한다. 자취방에서 직무를 홀로 공부하던 그때의 열정도 남아있다. 자취를 하며 나도 이렇게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나는 항상 소극적인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나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사실 말은 이리 거창해도, 여전히 내일 회사 가서 처리해야 할 업무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하다.

별 수 있나, 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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