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와 '공간'
노크 필수. 마음대로 문을 열지 마세요
학창 시절 누구나 자기 방 앞에 붙여 놓았을 문구다.
내 방에 들어가면 거기서부터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생각보다 보안이 허술? 하다. 문이 불쑥불쑥 열릴 때가 많았다. 누구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나만의 비밀공간은 집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진짜 비밀 이야기만 적어둔 비밀 일기장이 언제든지 엄마 아빠에게 들킬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이건 진짜 비밀인데. 아무도 몰라야 하는데'라는 비밀도 이미 공기 중에 퍼져 있는 듯했다.
초등학교 1~2학년일 때까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이불텐트'였다.
장롱 옆 쪽에 의자를 몇 개 두고 이불로 그 위를 덮으면 아담한 텐트처럼 보인다. 그럼 그 이불 안에 들어가서
또 다른 집이 생긴 것 같았다.
처음에는 3살 아래의 여동생과 같은 텐트에서 놀았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니 그 공간조차 혼자 있고 싶었다. "야 여기 좁아. 너도 새롭게 하나 만들어."
이 이불텐트는 내 것이라고 반 강제적으로 동생을 내쫓았다. 동생은 울상으로 아빠에게 달려가 말했다.
"언니가 나가래요. 아빠 나도 저거 하나 더 만들어주세요."
결국 한 방에 대각선으로 작은 텐트 두 개가 생겼다. 그 이불 안에서 과자도 먹고 음료수도 먹었다. 나는 그 이불텐트로 친구들을 초대하곤 했다.
마치 그곳이 나의 진짜 방인 것처럼 나는 그곳에서 아늑함과 편안함을 느꼈다.
요즘 유행하는 캠핑도 이런 느낌을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집과 방이 있지만 또 다른 공간의 아늑함.
어쩌면 캠핑의 원조는 이불텐트가 아닐까?
중,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불텐트는 더 이상 가치가 없었다. 일평 남직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학생까지는 계속 공부 위주의 생활을 하면서 내 방은 어릴 시절의 이불텐트처럼 아늑함과 평온함을 주지 않았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상이 있는 곳, 잠을 자는 곳,
언제든지 열릴 수 있는 개방적인 곳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파티션만 나눠져 있을 뿐 방은 누구다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꾸며보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 유튜브 찍어볼래?
자취를 시작하고 이제는 아무도 내 집에 내 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평상시 해보고 싶던 비밀스러운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유튜브를 하려고 자취를 시작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자취 방은 나 혼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니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바로 실행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과 유튜버를 시작하게 된 건 즉흥적인 도전이었다. 주말에 카페에서 친구와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회사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따분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정말 좋았던 순간을 회상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교 졸업 전에 인도네시아에 두 달간 봉사활동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새롭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던 친구도 미국 유학 중 만난 인도네시아 친구와 즐겁게 놀았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한국에 관심도 많고 호의적이더라. 그 친구들에게 한국을 소개해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계획이란 하나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성공이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나는 지금까지 회사 일 외에 무언가를 해내본 적 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더 겁이 없었다.
"야 요즘 유튜브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
"이런 식으로 하면 아무도 안 봐 "
와 같은 조언과 충고를 들을 세도 없이 카메라를 켜고 시작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국에서 자주 사 먹는 편의점 제품을 사 왔습니다.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삼각김밥 등 편의점 간식을 잔뜩 사 와서 카메라를 세팅했다. 좌식 테이블 위에 음식 세팅을 하고 카메라를 켰다.
영상은커녕 셀카밖에 찍어본 적이 없어서 자꾸 웃음이 나고 어색해서 NG를 몇 번이나 냈는지 모른다.
다시 마음을 다듬은 후에 삼각김밥을 먹기 시작하다가
'맛있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어 또 NG가 났다.
유튜브 영상으로 볼 때는
'이거 먹기만 하면 돈 버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오산이었다.
어떤 걸 먹을지, 어디서 먹을지, 맛 표현은 어떻게 할지, 리액션은 어떻게 할지.. 그리고 그걸 언제 다 편집하는지
정말로 머리를 꽁꽁 싸매야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렇게 유튜브를 시작하고 한국의 편의점 음식 먹방을 시작으로 이태원에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점에도 카메라를 들고 갔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을 소개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둘씩 영상을 올리면서 우연히 인도네시아 관광청에서 제작한 'wonderful indonesia' 영상을 보게 되었다.
관련 영상을 찾다 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해당 영상에 대해 ‘리액션' 영상을 제작하는 걸 알게 되었다.
리액션 영상은 특정 영상을 보고 리액션을 취하고
리뷰를 남기는 영상을 말한다.
그렇게 친구와 나는 인도네시아 뮤비의 리액션 영상을 찍게 되었고, 그 영상이 조회수가 폭발하면서 얼떨결에 구독자 수가 1,000명을 넘게 되었다.
그렇게 2000명, 3000명을 넘어 5,000명까지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친구와 나는 점점 부담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노래 리액션 영상은 저작권 때문에 수입을 하나도 가져갈 수 없었으며, 진정한 팬 보다는 호기심에 구독을 눌러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영상은 조회수가 현저히 낮았다.
그렇게 어떤 영상을 올릴지 고민에 빠지면서 유튜브를 잠시 멈췄다.
일 년이 넘도록 영상을 올리고 있지 않지만, 아직까지도 가끔 내 유튜브에 들어가서 영상을 볼 때면 나의 작은 도전이 참 귀엽고 재밌을 때가 많다.
그냥 해보고 싶어서 해보는 거예요.
부모님은 내가 이런 영상을 자취 집에서 찍고 있다고 상상도 못 하셨을 것이다.(지금도 모르신다)
주말 몇 시간씩 카메라 앞에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엔 인도네시아 노래를 틀어볼게요 "
하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음식을 먹는 영상을 본가에서 찍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마 유튜브를 찍어서 업로드하기도 전에
"이건 뭐 하는 거냐. 구독자가 몇 명이냐. 어디서 보냐"라는 질문과 관심이 많으실 게 눈에 보였다.
자취를 하기 전에는 모든 결정을 부모님에게 물어보고 했기 때문에'그냥 해볼까'라는 도전 자체를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단지 그냥 시작하기에는 도전에 대한 크기나 영향도, 가치 등을 평가받아야 할 때가 많았다.
물론 딸의 앞길을 막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내가 안정적이고 명확한 일만 하기 원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은 꼭 성과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냥' 해보고 싶으면 도전해보는 용기가 필요했다.
망해도 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해보고 싶으면 해 볼 수 있는
일명 깡다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은 뭐 하나 시작해보려고 하면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시작도 하기 전에 벽에 가로막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거 해밨는데, 이거 안되더라."
"주변에서 이거 해본 사람 봤는데 다 망했다"
부터 시작해서
'00 하다가 망했습니다'
라는 관련 글이나 영상을 공유해주기도 한다.
그럼 시작하기도 전에 걱정만 앞서고 풀이 죽는다. 그런 말과 영상을 접하면 이 도전이 정말로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취방에서 유튜브를 도전하며 구독자 5000명이라는 작은 성과를 이루면서 나는 확실히 알았다.
살다 보면 체계적으로 하나씩 알아보고 도전하는 것 말고도, '그냥' 도전해 보는 것이 의외로 큰 성취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가 뭐 해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고 슬며시 이야기하면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해봐. 해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