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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Oct 03. 2023

동생이 오늘의 집 VIP면 생기는 일

자취와 '인테리어'

출처 : pixabay
제발 옷장 좀 골라줘. 침대 프레임도, 테이블도, 러그도 부탁해.


자취를 하며 동생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바로  "대신 골라줘"였다.

 냉장고, 옷장 등이 풀옵션으로 들어있던 이전 집에서 옵션이 거의 없는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인테리어 제품을 고를 일이 많아졌고 나는 매일 다급하게 동생을 찾았다.


동생은 그럴 때마다 귀찮기는커녕 반짝이는 눈으로 되물었다.

" 예산은 얼마야? 어떻게 배치할 거야? 어떤 용도로 살 거야? 우선 기다려봐."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은 자기 나름대로 가격과 성능과 인테리어 3박자까지 모두 갖춘 제품을 찾았다.

그럼 나는 그 제품을 후보에 넣는 게 아니라 바로 장바구니로 가져갔다.

 "고마워. 이거 사야지"


동생이 추천해 준 대로 테이블과 행거, 침대 프레임과 수납장 등을 구매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생은 친히 내 집에 방문을 해주어 인테리어를 하기 시작했다.

 "언니 침대는 이 방향으로 여기에다 둬. 동선을 고려하면 행거는 이 쪽이 낫겠다. 공간 분리를 위해 소파는 그 가운데에 두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조언에 머리가 아팠냐고?

아니다. 오히려 좋다. 동생이 하란 대로 하면 되니깐 너무 기뻤다. 그렇게 나름 성공적인 인테리어를 하고 동생은 한마디 했다.

 "만족스럽네. 너무 설렌다."

 

3살 아래인 동생은 자칭 인테리어 전문가다.

요즘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오늘의 집'이라는 어플에서 얼마나 구매하는지를

알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자취생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다는 인테리어 쇼핑 어플의 VIP 등급인 동생은 식기류부터 시작해서 이불, 건조기, 조명 등 인테리어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찾아보고 구매하곤 한다.


오늘의 집 어플만 보는 것도 아니다.

네이버 리뷰부터 유튜브 영상까지 찾아보면서 인테리어의 분위기와 동선까지 체크한다.

그런 동생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놀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 놀래서 한 마디씩 했다.

"아니 네가 그렇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어?"



출처 : pixabay
옷장 새로 샀어. 이번 주에 옷 정리하자.


동생과 28년을 한 집에서 같이 살았지만,

동생이 그렇게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지는 자취를 시작하며 처음 알았다.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그런 낌새(?) 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집은 자매의 인테리어 취향을 반영해서 알록달록 이쁘게 꾸며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책을 최대한 많이 꼽을 수 있는 책장,

옷을 최대한 많이 넣을 수 있는 옷장,

그리고 책상이 방 인테리어의 전부였다.

3살 터울이라 그런지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이 겹칠 때가 많아서 옷이나 책도 한 번에 관리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는 한 번도 가구를 골라본 기억이 없다.  

가끔 기억나는 건 옷장이나 책장등이 낡으면 어느 순간 가구단지에 가셔서 사 오셨던 것뿐이다.

"옷장을 너무 오래 써서 새로 샀어. 옷 정리하자"

라고 이야기하시면 가족끼리 모여서 옷을 정리하곤 했다.


그리고 나도 내 방에 대한 불만이 하나도 없었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집은 정말 해야 하는 공부를 하는 공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4년 전쯤 자취를 시작하고 일 년 뒤에 동생도 나를 따라 자취를 시작했다. 회사가 강남 쪽에 있어 두 자매 모두 서울 상경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동생과 거의 동시에 자취를 시작하게 되니 '자취 스타일'이 엄청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평생 가구나 생활용품 등 아무것도 골라보지 않았던 자매였고 본가에 살았을 때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기 때문일까. 나는 동생과 나의 인테리어 취향이 비슷한 지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출처 : pixabay
너는 낭만주의자고, 나는 실용주의자야.


알고 보니 동생은 낭만주의자였다.

(낭만주의자의 정확한 정의는 아닌 것 같으나 내가 느낀 낭만주의자는 동생이 딱이다.) 집에서 쉬는 시간과 여유를 소중하게 여겼다.


인테리어는 아기자기하면서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색깔은 브라운&화이트로 통일했다.

"언니 이 시폰 커튼 이쁘지 않아? 이걸 하면 확실히 방 분위기가 살아.

인터넷에 찾아보니깐 봉은 이걸로 사고 끼우면 금방 하더라고. "

 동생의 자취방은 시간이 갈수록 스튜디오처럼 변해갔다. 이쁜 액자가 있고, 좋은 향기가 났다.

동생은 쉬는 날이면 자취방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쉬는 것이 인생의 낙이라고 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게 바로 행복이지. 너무 좋아"


반대로 나는 실용주의자였다.

인테리어는 모르겠고, 집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찾아서 관련된 제품을 집어넣기에 급급했다.

나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내 분신과도 같은 '노트북'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실용적인 공간을 만들어 줘야 했다.

그 목적 하나만 바라보고 테이블과 의자, 모니터 암을 구매했다. 모니터와 노트북을 편하게 연결할 수 있는 테이블과 자유자재로 모니터를 움직일 수 있는 모니터암을 구매하니 기분이 좋았다.

 ' 아 효율성이 올라간다. 너무 좋아.'

싱글벙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다음은 무엇이냐고? 그게 끝이다. 나는 정말 이걸로 충분했다.


인테리어에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이사 가는 집에 살던 전 세입자가 쓰던 것을 물려받기도 했다.

계약금을 넣고 자취방의 치수를 재기 위해 이사 가는 집에 들렀던 적이 있다.

그때 마침 전 세입자가 집에 있었는데 부동산 중개인에게 "이거 책상이랑 블라인드 같은 거 버리려면 신고해야 하죠?'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그 순간 이건 기회다 싶어 바로 이야기했다.

"이 블라인드 제가 살 수 있을까요? 책상도 안 쓰시면 같이 살게요."


블라인드 색깔은 어떤지, 블라인드를 할 건지 커튼을 할 건지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바로 인수를 받은 것이었다.


그러자 전 세입자는 "이거 인터넷에서 6만 원에 샀는데, 반값에 드릴게요. 3만 원만 주세요. 책상은 원래 버리려고 했던 거라 그냥 가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아싸'를 외치며 이야기했다.

"네 덕분에 사야 할 거 해결했네요. 감사합니다."


물론 나중에 동생이 집에 놀러 와서 블라인드 색깔이 너무 탁하고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마디 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필요한 블라인드가 제 기능만 다 하면 된 지. 저렴하게 사니 더 좋더라"

라고 말하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자취방은 공부나 업무, 투자를 하기 위한 공간으로 여겨졌다. 휴식이나 여유랑은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그 공간에서 최대한 아웃풋을 뽑아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취방은 자연스럽게 실용적인 것들로 채워졌다.

아침을 편하고 간단하게 먹기 위한 냉동 닭가슴살,

업무 할 때 간단하게 먹기 좋은 스틱 커피,

수많은 수첩과 책이 있는 빼곡한 책장까지 실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모아갔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다양한 실용 아이템들이 합쳐져서 내 자취방은 통일감이라고는 없는 공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자취하는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와 잘 꾸미고 산다." "방이 진짜 이쁘다."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다들 똑같이 한 마디씩 했다.

"너는 이 공간에서 정말 열심히 살고 있구나"



출처 : pixabay
나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이해하기


동생과 자취방 인테리어 소품부터 분위기까지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덤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가치관'의 차이였다.


동생에게 중요한 것은 일상의 여유였다.

환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인테리어 소품을 보고 여유를 느꼈다. 주말에는 거의 노트북을 켜지도 않았다.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오면 그걸 읽는 시간이 동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소였다.


반대로 나는 항상 노트북을 켜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엑셀에 가계부를 정리하고, 어떤 기술이 새로 나왔는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주말 또한 노트북을 들고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운동에 잠시 다녀오고 통잠을 자는 것이 행복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지금 해야 할게 많은데 그냥 쉬면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아?"라는 핀잔이나

 "가계부를 NOTION이라는 프로그램 써봐.바로 공유해 줄게"라고 내가 아는 좋은 기술을 반강제적으로 공유하곤 했다.

 

하지만 자취를 시작하고 나와 동생이 각각 평일과 주말에 '집'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낭만주의자 동생과 실용주의자인 내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도 있었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 2024년 다이어리를 벌써 구매한 나는 동생에게 줄 다이어리까지 같이 구매해서 선물을 주며

"같이 카페 가서 내년 계획을 세워보자"

라고 이야기했다.

동생이 좋아하는 취향의 이쁜 다이어리가 동생에게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같이 가보자."


물론 나도 동생의 도움이 절실할 때가 많다. 이제 곧 또 SOS를 요청해야 한다.

 "건조기 사용하면 빨래 스트레스가 줄어서 실용적인 것 같은데 말이야. 뭘 사야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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