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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주 Sep 03. 2023

취미가 없는 게 제 취미입니다

자취와 ‘취미’

출처 : pixabay
우주 씨는 취미가 뭐야? 이번 주말에는 뭐 해?


사회 초년생 시절, 금요일만 되면 듣는 단골 질문이었다. 직장인에게는 꿀 같이 주어지는 이틀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하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항상 똑같았다.

"딱히 취미는 없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집에서 쉬어요."


똑같은 질문, 똑같은 대답이 오고 가면 마지막에 나오는 선배들의 조언은 똑같았다.     

 "우주 씨도 취미도 가지고 그래봐. 직장인이 일만 하면 재미가 없잖아."


그때는 취미 하나 없는 게 얼마나 머쓱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뭐랄까,놀줄 모르는 우등생이 된 기분이라 창피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열심히 노는 자유로운 직장인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평일에는 아침 6시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였다.

토요일은 무조건 늦잠을 자는 날이었고, 가끔씩 있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러 주변 맛집에 가는 게 전부였다.

친구들도 나와 같이 사회초년생이거나 아직 학생인 신분이 많아서 어설픈 신세 한탄을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났다. 나의 주말은 그게 전부였다.


내 나이 24살에 처음 회사에 취직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대학생 때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후 쉬지 않고 바로 회사에 왔으니 나만의 시간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처음으로 자유가 주어졌던 대학생 시절,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있으면 나는 다이어리를 펼쳤다.

  '이번 방학때 할 일

주말에 할 일

도서관에서 할 공부

취득해야 할 자격증 리스트'


 지금 하나라도 더 준비해야 미래가 밝을 것 같았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 벅찼다. 그렇게 다이어리만 빼곡하게 채운 후 직장인이 된 나는 나만의 취미를 가질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출처 : pixabay
이번 주말 뭐 하지? 취미를 찾아보자.


자취를 시작하며 다이어리에 적은 내용이다.

일 말고 쉴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조차 일이었다.

친구를 만나는 것 외에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취미를 꼭 가져보고 싶었다.


자취를 시작하니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다.

한 여름에는 집에 와도 해가 떠있었다.

저녁을 먹어도, 주변 다이소를 구경하다 집에 와도 시계는 저녁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 주말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늦잠을 자고 싶어도 10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녀도 딱히 취미가 생각나지 않았다.


취미라는 명사에 들어가는 건 생각보다 깐깐한 일이다. 단순히 침대에 누워있기, 친구를 만나기는 취미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랬다.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 도전한 취미는 '운동'이었다.

집 주변에 pt 전용 헬스장에서 타임세일로 pt을 1회당 50,000원에 할 수 있다고 하여 16회를 끊었다.

카드를 내미는 손이 후들후들했지만, 제대로 운동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가기 싫은 몸을 이끌고 운동을 가다 보니 어느 순간 시키지 않아도 헬스장에 가서 기웃거리며 운동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대단한 취미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고 그게 습관이 되었다는 게 어느 순간 느껴졌다.

이틀에 한 번은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회사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일 끝나고 운동 가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진짜 대단하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요 힘들지 않아요. 그냥 취미 같아요. "


두 번째로 도전한 취미는 '블로그'였다.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쓰는 것은 더욱 좋아하는 나에게 블로그는 작은 우주 같았다.

특히 회사 출퇴근 시간에 지하철에서 블로그 앱을 켜고

지난 주말 다녀온 맛집의 후기를 후딱 올렸다.


그렇게 내 블로그에 방문하는 방문자 숫자가

 1명에서 50명, 100명, 500명

이렇게 늘어갈 때마다 진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친구들은 내 블로그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 블로그 글 쓰는 거 어렵지 않아?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하지만 이상하게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게 힘들지 않았다. 사진과 적절히 조화를 이룬 글을 쓰고 포스팅버튼을 누르면 짜릿했다.

"아니 나는 블로그가 정말 재밌어. 그냥 취미처럼 하는 것 같아. 취미처럼. "


출처 : pixabay

드디어 내 입에서 스스로 '취미'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오기 시작했다.

일상 곳곳에 남아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

대단하진 않아도 어렵지도 않은 것이었다.


자취를 시작하며 내 시간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간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24살에 취미가 하나도 없었던 내가 30살이 되어 이제는 취미를 자연스럽게 공유할 여유까지 생겼다


재밌는 것은 예전 사회 초년생 때 상사에게 들었던 질문처럼 똑같이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 00님은 취미가 뭐예요? 주말에는 뭐 하나요? "

 내가 질문을 하는 시간이 되니 이제야 그 질문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진짜 직장인다운 즐거운 취미가 있는지, 주말에 뭐하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그냥 하는 말'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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