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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일제문소 Apr 17. 2024

키미에게

어느 남미새의 고백

마음은 3월 23일부터 먹었어!

내가 이 글을 생각한지는 한참 되었다는 걸 굳이 생색내고 싶어서 캡쳐를 떠봤어. 메모장만 한참 들여다보다 덮은 게 여러 번인데 막상 아무것도 준비를 못했다고 너에게 자수를 하고 나니까 글이 써진다. 생일 축하해. 출장을 가든 여행을 가든 자그마한 엽서 하나는 꼭 써주는 너에게 러시아 소설 같은 대서사시로 보답하고 싶었는데 부담스러울까봐 작고 귀엽게 내 브런치로 준비해봤어.

중1이 아니고 중2였네…

아, 사실 너의 생일에 맞춰 글을 쓰려고 이거까진 준비했었어. 델리스파이스 <고백>의 가사 캡쳐. ‘중2 때까진 늘 첫째줄에’ 이 가사가 자꾸 맴돌더라고(사실 중1이라고 기억함). 어릴 때부터 훤칠했던 너는 중8 때까지 첫째줄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지만…일찌감치 홍대병에 걸리고 델리스파이스를 좋아하던 너는 참 이상하고 멋졌어. 수업시간에 잠을 많이 자는 중3 언니를 둔 것까지도. 나는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장국영을 좋아하고, 디카프리오 엽서 뒤에 편지를 써주던 너는 멋진 취향의 서울사람 같았달까. 아직도 너의 닥터마틴과 곰돌이 가방도 생각나. 그리고 이제 그만한 딸이 있어도 될 나이에 이런 말 하는 거 너무 웃기긴 하지만 전교 1등으로 들어와서 쫄딱 망한 나와 새로운 1등이 된 너, 우리가 같이 봤던 <우리들> 같은 소녀들의 영화를 보면 우리는 되게 대결구도여야 하는데 나는 니가 좋아하는 게 그렇게 또 좋아보이더라? 멋있었어.

우리 이 영화도 같이 봤지

우리는 그때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어른스러운 척을 하며 그렇게 소녀스러운 것들을 많이 안한 것 같은데 서랍을 정리하다가 나오는 것들을 보면 그건 그냥 나의 착각이었던 것 같아. 교환일기도 쓰고 뭔놈의 스티커 사진을 그렇게 찍었는지. 남들 하는 건 다 했더라. 그리고 너로 인해 음악도시를 알게 되고 밤마다 라디오를 듣던 나는 성적을 말아먹고…응? 생각해보면 우리가 같은 반을 한 건 1학년 때 딱 한 번인데 이놈의 인연이 질기다면 질긴 게 여기까지 왔다. 그치.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모르고 지낸 세월의 거의 두 배가 되어가고 있어. 부끄럽지만 나는 너를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해. 젊고 체력이 좋은 나머지 인생을 가만히 두질 못했던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실컷 하고 너의 얘기를 많이 못들어준 것 같아. 그래서 웃기게도 너는 25년이 넘어가도 점점 더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의 개삽질이 약간 KBS 아침드라마라면 너의 개삽질은 SBS 시트콤 같아.

유튜브에 키세키 민호 검색해봐

늦은 밤, 신해철의 개똥철학을 들으며 세상 심각한 척하던 우리가 이제는 샤이니 영화를 보며 오열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 웃기고 이상한 과정을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서로의 인생에서 꽤 중요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느껴져. 너 원래 시간이 깡패인 거 알지? 가족은 내가 못이기니까 일단 빼고, 너에게 내가 짱이고 나에게도 니가 짱이야. 서로가 서로를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켜보고 기억할 수 있게 우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자. 환갑에 볕 좋은 데서 샤넬 트위드 자켓 하나씩 딱 걸치고 화이트와인으로 낮술 거하게 때릴 수 있게 좋은 컨디션 한 번 유지해보는 거야. 아마 내가 죽으면 나의 가장 어린 시절부터 오래 기억해줄 수 있는 친구는 너니까 서로 더 좋은 기억 많이 남길 수 있도록 내 인생 단도리 잘하고 너에게도 더 정성껏 잘할게. 생일 축하해.


그리고 샤이니 콘서트 예매 25일 저녁 8시야. 나 그날 헤드윅 공연 7시 반부터라 지금 큰일났어. 내일 또 얘기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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