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현직으로 활동한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혹자는 나를 통번역'사'로 또 다른 사람들은 나를 통번역'가'로 부른다 (통번역대학원에서는 통역사, 번역사라는 표현이 주로 쓰였던 기억이 있다).
사실 명칭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마는 모 포털 사이트의 지식인만 보아도 이 두 표현을 두고 그 차이를 논하거나 우열을 가리려는 등의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직자인 필자에게는 우열은 체감할 수 없으며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한없이 주관적인...
번역사의 경우 '사'로 끝나는 다른 직업 표현처럼 자격증을 가지고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에 의미가 강하고(물론 국가공인 번역사 자격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가라는 표현은 작가, 예술가, 음악가 등과 같은 가(家) 자를 사용할 것이며, 이는 어느 한 학문이나 분야에서 반열에 오른 사람들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사 로 끝나는 직업에 대한 열망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 반열에 도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필자가 찾아본 두 표현에 대한 해석은 지나칠 만큼 자극적이기도 했고, 극단적인 느낌도 주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번역가라 하면 번역사를 넘어서 (번역) 작가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물론 번역 대상물의 장르와 성격, 그리고 의뢰자의 요청에 따라서 번역물이 현지화를 거쳐 재창조의 수준으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이론과 개념을 사용하는 기술 및 학술서의 경우는 현지화라는 개념이 거의 불필요하고 글로벌화된 현시대에는외화를 볼 때도 대다수의 관객들이 그 고유문화를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거나 받아들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지화가 번역의 필수가 아닐 수 있고, 또 번역가의 번역을 비평하는 취미를 가진 관객과 독자가 이미 다수이다. 그 결과 번역사의 개입이 많은 번역은 논란을 낳기도 하고, 그와 정반대로 팬덤이 형성되면서 엄청난 지지를 받기도 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번역 작업을 할 때 때로는 관성적으로, 때로는 무수한 고민에 고민을 반복한다. 하지만 어떠한 텍스트를 번역하든 작업을 할 때에 나만의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매 문장이나 표현에서 흔들리기 쉽고 고민을 거듭해도 최선의 답(표현)을 찾아낼 수 없으며, 그 과정에 발생하는 터무니없는 실수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심심치 않게 방어적인 번역을 하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 다시 한번 두 가지 명칭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통번역'사'든 통번역'가'든 본인이 불리길 바라는 이름이 있다면, 그래서 선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기준과 주관을 갖고 그에 걸맞은 수준의 작업물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또 고민하고 공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