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는 파트너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부스 또는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 번역사는 커서가 깜빡이는 모니터를 앞에 두고 번역하는 순간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통번역사가 되고 싶은 혹은 통번역사가 되기 위한 준비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해당 직업군의 종사자들이 일을 하게 되는 프로세스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본다. 그들은 오롯이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번역사의 경우번역 에이전시 또는 출판사를 통해서 작업 의뢰를 받기도 하고, 기업 등의 의뢰 주체로부터 직접 번역 요청을 받기도 한다.
에이전시나 출판사를 통해 작업하는 경우는 번역회사의 PM이나 출판사의 편집자가 번역사의 작업이 수월하도록 파일을 변환하여 준비하고 각 번역사의 1일 작업 분량을 파악해 일정을 조율하며, 1차적으로 번역 작업이 마무리된 작업물의 누락이나 오탈자 등을 파악하거나 별도의 감수자를 통해 최종 납품 및 출판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대부분의 문제를 컨트롤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실제 작업 시간 대비 이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을 경우가 많아 이들의 역할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4-5년 차이던 시절 그리고 11년 차를 바라보는 현재까지, 따로 또 함께 일하는 이 파트너 에이전시들의 존재를 대하는 마음이 달라져왔다. 처음 샘플 번역을 하던 시절은 PM에게 받을 크리틱이나 피드백에 대한 걱정으로 약간은 두려워하던 존재였다면 4-5년 차에는 PM이나 에이전시가 그리 중요하지 않고 이들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문제없이 작업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도 했었다. 에이전시의 수수료나 구조 등에도 불평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더 많은 경험이 쌓이고 여러 의뢰사들과 직접 거래를 하는 비율이 늘어난 현재는 에이전시가 소소하고 번거로운 일들을 얼마나 많이 처리해 왔었는지, 또 그 덕에 내가 얼마나 편하게 순수한 번역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에이전시와의 적극적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업 중에 발생하는 고민이나 문제 등을 스스럼없이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아간다.
물론 통역의 경우 의뢰사와의 직접 거래가 훨씬 많고 에이전시가 하는 역할도 중개를 하는 정도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대신 동시통역 상황에서 파트너와 함께 할 때에 심리적 안정감을 나눈다거나 드물지만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때로는 고객사의 담당자가 현장에서 마치 통역사와 파트너를 이룬 듯 소통하며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결국 프리랜서 혹은 1인 사업자로 활동하는 통번역사도 실제 업무현장에서는 따로 또 같이 (상황에 따라 그 상대가 달라지지만) 에이전시 등의 파트너와 함께 일하게 된다. 통번역사인 내가 맡은 바만 다 해내면 일이 문제없이 굴러갈 것 같지만 그 속에서 소통과 교류가 되지 않으면 최종 결과(물)는 달라질 수 있다. 잘 굴러가는 자동차의 윤활유와 같이 역할을 해냈을 때 더욱 빛나는 존재가 우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