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장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때때로 통번역사로서 내 역할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하고 실상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상황에 따라서 현장의 그 누구보다 양국의 문화나 정서, 표현 방식의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필드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초기에는 의욕이 앞서지만 어느 정도로 상황에 개입해야 몰라 매 순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통역만 놓고 보자면 통역사가 개입할 사항이 그리 많은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발화자의 표현이 갖는 진의를 전달할 것인지 단순히 직역을 할 것인지도 통역사가 순간적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번역가도 같은 결정을 매 순간 해야 함은 다르지 않다). 사전에 고객으로부터 회의 목적이나 방향성을 전달받은 경우는 이런 결정이 한층 수월해진다.
그 외에 대형 리서치 프로젝트의 통번역이나 독일 현지 박람회 참가 또는 행사 전반에 걸쳐 특정인을 수행하며 이루어지는 통역을 맡는 경우에는 모든 상황에 대비해서 사전에 리서치와 스터디를 한다. 고객사가 제공하는 정보가 넘치지만 그것은 순전히 일방적 입장과 목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경우가 다수이니 통역을 위해서 나는 거꾸로 현지(상대방)의 입장, 상황을 미리 파악해야 원활한 프로젝트의 진행이 가능하다. 이런 준비가 바탕이 되어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일개의 통번역사인 내가 프로젝트의 최종 성과에 더 큰 의욕과 욕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어떤 방향으로라도 조금 더 도움이 되고자 통역 이외의 순간에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어필했던 적도 있었다. (고객의 요청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이런 나의 열의에 만족을 표하기도 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져 내가 더 많이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어느 한 고객은 통번역사의 이런 열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월권을 한다고 여겼던 것일까... 통역사가 뭘 알겠어? 혹은 통역사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해야지! 라는 등의 언사를 경험한 적도 있다. 심지어 프로젝트 도중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통번역사인 나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통역사가 제대로 통역을 못해서 그런 거 아니야? 라고 말이다. 하지만 물론 그 고객사 직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 것이 통역사였다는 것을... 그 결과 프로젝트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상당히 방어적으로 업무를 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11년의 커리어에서 손에 꼽히는 단 두 번의 Worst(?) Practice 중 하나로 남았다)
잘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들은 결국 클라이언트와 마음의 거리를 잘못 설정한 탓이리라. 과연 적절한 마음의 거리를 정의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경험에 따른 나의 적극성 탓에 수년째 꾸준히 통번역을 맡겨주는 파트너사도 있고, 아이러니하게 해가 바뀌어도 원청 업체와 나는 변함이 현장에서 만나지만 대행사만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프리랜서 통번역사인 나에게 일의 지속성 여부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 일 또한(특히 통역)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당사자들의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지치지 않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