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닷 May 16. 2024

동굴밖을 나서는 제자를 기다려 주는 스승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동굴의 비유' 이야기가 있다. 커다란 동굴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동굴 벽면만을 볼 수 있는 죄수들의 이야기이다. 죄수들은 오로지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면서 살기 때문에 그 그림자를 실재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죄수들 중 한 사람이 동굴 밖 세상을 경험하고는 자신이 동굴 속에서 본 것들은 그림자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동굴로 돌아가서 열심히 설명했지만 죄수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그림자에 대한 의심이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없는 죄수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죽는 날까지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가 전부인 세상을 살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 안은 불완전한 세계이다. 동굴 밖 세상이야 말로 실재하는 참된 이데아 세계인 것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일상은 언제나 동굴 안의 불완전한 세계일 수 있다. 가끔 동굴 밖 이데아의 발견을 도와주는 이를 만나면 우리는 그를 선생님이나 스승, 또는 은인이라고 말한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 어학사전을 검색해 보면 '교사'는 '주로 초등학교ㆍ중학교ㆍ고등학교 따위에서,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뜻한다. 법이 정한 장소에서 법이 정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가르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 많은 교사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에 '교육'은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줌'으로 정의한다. 인격을 기르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가르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을 모두 스승이라고 부른다면 주변에 스승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어린아이에게서조차 우리는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스승은 내 이성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동굴 밖 세상을 소개하며 그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고 동굴 밖 세상을 알려주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스승은 교육을 행하는 존재로 확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굴 밖으로 나온 모야 / 나젤리 페로 지음/ 김현아 옮김 / 울림어린이 / 2022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동굴 밖으로 나온 모야' 그림책에서 주인공 모야는 가끔 동굴 속으로 들어오는 신기한 공을 보며 바깥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된다. 힘겹게 동굴 밖으로 나온 모야는 동굴밖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인상 깊은 점은 동료들에게 돌아가 알려주고 싶은 게 많았지만 훌쩍 성장해 버린 모야는 좁은 동굴입구로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모야가 선택한 방법은 동굴밖에서 찾아낸 신기한 공을 동굴 안으로 던져 넣는 것이었다. 모야는 여러 날을 끈기 있게 기다렸다. 자신처럼 신기한 공이 궁금해서 동굴 밖을 제 발로 기어날올 누군가를. 


어쩌면 인간의 호기심은 모든 배움과 도전의 첫 단추일지 모르겠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이 바로 동굴 밖으로 첫 발을 내딛는 시작이다. 그러고 보면 모야가 동굴 안으로 던져 넣었던 신기한 공은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스승은 모야처럼 끊임없이 좋은 질문을 던져서 제자의 잠재된 호기심을 끌어내는 사람이다. 동굴 안에 있는 이는 자신만의 완벽함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교육도 힘을 잃기 마련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스승도 제자의 동굴로 기어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스승의 가르침은 언제나 동굴 밖에서 유효하다. 


내가 사는 동굴 안의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이고 진실인 죄수들은 아무것도 궁금한 것이 없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궁금한 게 없다. 이들에게는 억지로 가르침을 줄 수 없다. 조금만 이성을 확장시켜 보면 세상은 이상하고 격변하며, 궁금한 것 투성이인데 답답해 보일 수 있겠지만 제 아무리 좋은 것도 강제로 들이밀면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무지해 보이는 자의 동굴이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세상 전부이다. 허락 없이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는 행위는 서로의 관계를 망칠 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길뿐이다. 순서를 지켜야 한다. 신기한 공 던지기와 기다리기. 


반면에 자신의 논리와 정의가 확고 불변한 사람은 한 번쯤 의심하고 질문해 볼 일이다. 내가 믿고 있는 진실이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허상은 아닌지. 10살 때도 배웠고, 20살 때도 배웠고, 수많은 졸업도 하며 많은 것을 배워왔겠지만 배움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나 단 하나의 진실을 알아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기에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삶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배움이 존재하는 한 스승은 언제나 필요하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질문으로 정리하며 동굴밖을 나서는 제자가 될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언제나 훌륭한 스승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포켓몬 수첩을 제낀 원고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