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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닷 May 28. 2024

덕후의 순기능

3월부터 2만 2천 권이 소장된 도서관 서가를 뒤집어엎고 있다. 포화상태가 되어버린 책꽂이에서 폐기할 책을 다량으로 빼고 옆으로 밀며 전체적으로 정배열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벌써 두 달째 틈틈이 하고 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목장갑을 끼고 손목에 아대를 두르며 신성한 노동을 시작할 때면 언제나 강제 스쿼트와 실내 만보 걷기를 하는 기분이 든다. 정신없이 책을 빼고, 옮기는 단순노동에 몰입하다 보면 신체부위 중 제일 약점인 왼쪽 손목이 시큰거리며 퇴근을 종용한다. 아직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끝나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좌절감에 입안이 쓰다. 


학교도서관 사서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업무이기에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서로가 잘 아는 업무이다. 고단함을 일러바치며 위로받을 요량으로 친한 사서 선생님에게 전화했다. 그녀도 지난달에 비슷한 업무를 했었기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누고 싶었다. 그녀는 징징거리는 내 말을 무 자르듯 싹둑 자르고는 뜬금없이 지난 주말 다녀온 임영웅 콘서트 자랑을 한다. 


"우리 영웅이가 2층 객석 팬들을 위해서 열기구에 올라타더라고~ 아유 그 위험한 것을! 알지? 우리 영웅이는 팬들 위하는 일이면 물불 안 가리잖아~ 세상에 이벤트를 얼마나 다양하게 준비했던지!! 살이 쏙 빠졌더라고... 연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 우리 영웅이 콘서트 힘들게 준비한 거 보니 나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나는 이제 우리 영웅이보다 안 힘드면 참기로 했어!"


아... 임영웅 이야기로 화색이 만연한 중년의 사서는 서가정리 따위는 힘든 일이 아니라고 내게 강조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일이 있는데 임영웅이 하는 일 처럼 힘든 일과 그 보다 안 힘든 일이란다. 그리고 그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팬들을 웃게 해 주기 위해 애쓰는 임영웅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면 자신이 하는 일 중에 힘든 일은 아무것도 없단다. 나는 시큰거리는 손목으로 부여잡고 있던 휴대폰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직업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당장 임영웅 팬클럽에 가입해야 하나 잠시 고민해 본다. 트롯은 내 취향이 아닌데... 그러고 보니 내게도 피로를 싹 걷어가 주는 최애가 두 가지 생각났다. 하나는 '수영'. 첫새벽에 잠이 덜 깬 채로 부스스 수영장에 들어가도 딱 10분만 지나면 발그레한 혈색이 온몸을 휘감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나를 인친님들은 '수친자'라 부른다. 수영에 미친 자라고.... 


두 번째는  '그림책 같이 읽기'. 이건 더 강력하다. 그림책을 읽으며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절인 배추 같던 온몸의 세포가 재생되듯 되살아 나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림책 수다를 나누다 보면 어디선가 에너지가 샘솟는 걸 느낀다. 자신하건대 감정 측정기가 있다면 0에서 100으로 그래프가 수직상승하는 결과값을 보여줄 것이다. 사랑하는 그림책들을 떠올리니 갑자기 손목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같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덕후의 길로 들어서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게 바로 이러한 덕질의 강력한 순기능 때문이다. 좋아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에 빠지면 삶이 단순하게 깊어지고 아름다워진다. 나 역시 그저 간결하고 다정한 그림책이 좋아서 시작한 그림책 읽기가 이제 그림책 덕후를 넘어서 그림책 강사로 진화하고 있다. 어린이 독서심리를 배우고, 북큐레이션을 배우고, 그림책 테라피를 배우고, 그림책 라이브 방송을 하고 이제 그림책 강좌를 의뢰받았다. 이 모든 과정은 사서업무와는 또 다른 행복감을 주기에 더, 더, 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어느새 '수친자'와 '그림책 덕후'는 든든한 부캐가 되었다. 물어 젖은 솜처럼 퇴근했지만 그림책 강좌를 준비하며 그림책 이야기를 나눌 생각을 하니 어디서 또 없던 에너지가 슬금슬금 나를 들어 올린다. 다음 달부터 새롭게 도전하는 그림책 강좌를 통해 또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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