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위원 한 명이 방과 후 수업을 땡땡이치고 도서관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갔다. 방과 후 선생님에게는 도서관에서 중요한 봉사를 하고 오느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다. 방과 후 선생님과 사서샘이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사이라는 사실을 녀석은 몰랐었던 것 같다. 어제는 2시부터 도서관 문을 잠그고 출장을 갔었는데 한 학생이 도서관에서 하는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학원에 늦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교무실로 학부모님의 확인전화가 왔었다. 하필 도서관 문이 잠겨있던 날이라 단박에 거짓말이 탄로 나 버렸다. 웬만하면 아이가 혼나지 않게 도와주고 싶지만 사전조사 없이 저지른 녀석들의 거짓말은 금세 다 들통이 나버렸다.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질문했다. 대체 너희들에게 공부란 무엇이냐고, 그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왜 하느냐고, 차라리 방과 후도 학원도 다 끊고 마음 편히 실컷 놀기라도 하라고. 그랬더니 또 그렇게 노는 것은 마음이 불편해서 절대 안 된다고 답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싫어도 참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성공을 해야 행복해 질 수 있단다. 어디서 세뇌는 또 야무지게 받았다. 아 그럼 참고 열심히 하지 왜 땡땡이치고 거짓말을 하느냐고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은 그 당연한 걸 모르냐는 눈빛으로 답했다. 너무 어렵고, 하기 싫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니까 어쩔 수 없단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성공을 해야 행복한 것일까? 성공하기 위한 성취지향적인 경쟁의 피곤함이 지금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과연 성공을 위해 행복을 기약 없이 미루는 방식으로 정말 그 대단한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은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행복해야 성공한 삶 아닌가?
우리는 어떨 때 행복할까? 행복은 사이즈가 아니라 빈도수라고 했다. 아무리 커다란 행복도 무한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잘한 행복이 수시로 반복되는 것이 행복의 평균지수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고 보면 행복을 느끼기 위해 뭐 대단히 큰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 미소, 배려, 따스한 눈빛. 이러한 교감을 나누는 자잘한 순간들에서 충분히 작은 행복을 자주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온한 관계는 충분한 기쁨을 준다. 기쁘면 행복하다. 아끼는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만 봐도 기쁘다.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행동을 내가 하는 것으로 그를 기쁘게 해 주는 과정이 모두 행복이다.
아이들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기꺼이 그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며 행복을 느낀다. 부모님은 내가 걸음마를 떼면 기뻐했고, 내가 '엄마'라고 말하면 기뻐했고, 내가 한글을 읽는 순간 기뻐했다. 하지만 이제는 영어 원문을 술술 읽고, 방정식을 척척 푸는 정도는 해야 기뻐한다. 그것은 걸음마를 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수반한다. 아이들은 어느 수준까지 고통을 감내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압할 수 있을까? 결국 한계에 도달하는 순간은 오고야 만다. 어른들은 그 순간을 사춘기라고 부른다. 사춘기가 와서 말을 안 듣는다고 정의 내린다. 혹시 오해는 아닐까?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각자의 진짜 욕구와 행복에 대해 관찰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내 결핍과 욕구가 원하는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몰입해 보고 경험해 보는 과정이 공부다. 공부를 위한 도구는 책이다. 방법은 독서다. 내 행복을 자극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공부를 할 때 인간은 상상 이상의 몰입을 통해 성장과 깨달음의 기쁨을 경험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하찮아지는 게임이나 놀이등 다른 경험들을 등한시하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 따위를 기꺼이 감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시키는 선생님이 없어도, 지켜보는 부모님이 없어도 스스로 공부하고 성장하며 매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을 위한 첫 번째 단추는 '나'이다. 나를 알아차리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자기 주도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 시키는 대로, 정해진대로, 주어진 대로, 기계적으로 보내는 시간 속에서는 '생각'이란 것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8년째 행복이라는 주제를 연구해 온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권태'를 미래의 화두로 예견했다. 수만 년간 이어져온 결핍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로봇이 자잘한 일을 다 해주고, AI가 많은 선택을 대신해 주는 세상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 멀리가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엄마가 의식주의 모든것을 다 해결해 주고, 공부외에 대부분의 문제를 대신 선택하고 결정해주고 있다. 인류의 삶은 처음으로 잉여자원과 시간 앞에서 심심함을 느끼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러한 잉여의 삶은 행복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심심해서 괴로운 권태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행복의 기원 / 서은국)
'나'의 상태와 욕구를 관찰하고 알아차리지 않으면 행복은커녕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일상 속에서 권태의 늪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국한된 위험이 아니다. 그러니 나를 위해 의도적으로 시간을 투자해 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욕구는 무엇인가?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다. 내 경험상 이 물음에 답을 줄만한 가장 가성비 좋은 도구는 책이다. 깊이 있는 책 읽기가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이제 당신이 독서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