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참 이상한 운동이다. 분명 달리고 싶어서 뛰기 시작했는데 심장이 조여 오면 금세 걸음이 느려지다 가 곧 걷거나 멈추고 만다. 뛰기 전에는 언제나 좀 더 오래, 좀 더 빠르게 달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몸과 마음은 따로국밥이다. 가슴은 뛰자고 말하지만 심장은 그만 멈추라고 끝없이 유혹한다. 게다가 달리기를 시작 조차 하지 못할 이유가 너무 많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날이 춥거나, 날이 덥거나, 배가 너무 부르거나, 배가 너무 고프거나, 너무 피곤하거나, 너무 어둡거나, 너무 바쁘거나 등등등~ 달리고 싶지만 달리지 못할 이유는 매일 백만 스물한 가지보다 많이 생긴다. 그러니 달리기는 정말 정말 매력적이지만 쉽지 않은 운동이다.
그래도 달리고 나면 기분이 참 좋다. 심신이 처진다 싶을땐 언제나 달리고 싶다. 문제는 내 주변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래서 동네 러닝동호회에 가입했다. 이 추운 겨울밤 강변을 한 시간 함께 달려줄 사람들을 구하고 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이 사람들은 밤 8시. 약속 시간이 되면 약속장소에 짠! 하고 모인다. 이렇게 발을 모아 인증샷을 찍고, 준비운동을 마친 다음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기 실력은 마일리지 같은 것이라 많이 달려본 사람 순서대로 실력이 차곡차곡 차이가 난다. 그러니 이들은 시작만 같이할 뿐 금세 끼리끼리 각자의 속도대로, 자신의 컨디션이 허락하는 만큼의 거리를 함께 뛰다가 각자 돌아간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같이 뛰냐 싶겠지만 모르시는 말씀. 같이 '시작'하는 게 러닝크루의 핵심 포인트이다. 이 겨울밤 러닝의 최대 적은 백만 스물한 가지의 달리지 못할 이유로 늘어진 나를 가로막고 있는 현관문이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문을 열고 제시간에 맞춰 나가 발 인증샷을 찍고 나면 오늘 러닝에 반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중학생 두 명이 아빠를 따라왔다. 나는 아직 러닝크루들의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처지인지라 러닝 꿈나무들의 등장에 감탄했다. 다리를 질질 끌듯, 걷듯 아빠를 뒤따라 온 두 아들의 정성에 탄복했다. "저렇게 나오기 싫은데도 어쨌든 이 밤에 나왔잖아! 대단하다!" 그들을 아빠 따라 한 번 나와 본 기특한 런린이 쯤으로 봤던 나는 내심 뒤편에서 나와 함께 뛸 줄 알았다. 나는 참 사람 볼 줄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두 아들은 무려 아빠를 제치고 선두 그룹에 서서 10km를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 물론 뒤에서 7km만 뛰고 돌아온 나는 단톡방에서 후기를 주워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가!? 같이 뛴 것도 대견한데, 심지어 잘 뛰기까지! 분명 하루 이틀 따라 뛴 솜씨는 아닐 터이다. 가족끼리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은 참 로맨틱한 일이다.
오늘은 야근까지 하고 온터라 조금만 가볍게 뛰고 오려했는데 7km를 뛰었다. 페이스 6.4로 제법 빠르게. 함께 하는 달리기는 매번 시작할 때의 소박한 결심을 무너트리고 욕심을 붙인다. 이건 다 도파민이 의지박약한 나의 뇌를 가지고 노는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발끝을 따라 뛰다 보면 또 끝없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매번 내 의지만큼만 뛰었다면 쫄보 심장의 요청에 따라 운동하는 시늉만 하다 돌아왔을 텐데 말이다. 가족끼리 뛰어도, 낯선 이들과 뛰어도 다 좋다. 함께 뛸 수 있다면 다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