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러 선생님과의 첫 만남
"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어디서 본 것 같다.'이다. 인정. 흔하게 생기긴 했다. 안경 끼고 머리 길고 통통한 캐릭터는 어디서든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말을 건네는 사람들은 내 반응을 떠보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질문 같은 감탄사 같은 말에 대응하는 나만의 매뉴얼이 있다.
"저는 선생님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
여러 말 하지 말고 상대방을 처음 봤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게 그동안의 경험상 가장 깔끔했다. 어디서 봤냐고 되묻거나 내가 흔한 얼굴이다,라고 나에 대해 낮추듯이 얘기하거나 당황하면서 네?라고 하기라도 한다면 상대방들의 이어지는 반응에 내 기분이 항상 좋지 못했었다. 정말, 진짜로 어디서 본 것 같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으니까. 나도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내 모습을 나도 인정하고 기분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대화를 끊어내기 위해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일러주는 게 내가 찾은 현명한 답변이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도서관에서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는 분을 만났을 때는 '선생님'으로 불렀다.
"아~ 그래요~?... 혹시 어디 사세요?"
왜 물어보시냐고 다시 되물어 볼 수도 있지만 대답한다. 어디 어디 산다고. 마침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었다. 예상치 못했지만 반가울 일도 아니었다.
"아~ 우리 아파트구나. 아침에 애기 등원 자주 시켰죠?"
당황스럽지만 이런 '호구조사'스러운 질문도 내 나이에 들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인정. 아이가 셋쯤 있다고 말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필까 하다가 정직하게 또 대답한다.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유무에 대해서 물어보는 질문은 그나마 '예', '아니오'처럼 단순하게 대답할 수 있지만, 아이를 등원시켰냐는 질문은 고난도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서 상대방은 나의 정보를 조금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다.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부터 진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의 나이 또래는 어떤 지부터... 단계를 차례차례 밟는 질문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보를 순식간에 몇 단계를 건너뛰며 알 수 있는 질문이다.
"아이는 없습니다."
"아~ 그러세요~?? 아이 자주 등원시킨 거 본 것 같은데..."
"..."
질문하는 이 분은 안내데스크에 계시는 직원분이다. 이 분을 나는 '스토리텔러 선생님'이라고 내 나름대로 이름 지었다. 도서관 안내데스크에 있는 직원분들의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출근시간이 조금씩 달랐다. 보통 두 분이서 상주하고 있고, 이 분들은 시청 소속이라 했다. 본인들이 시청 소식이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스토리텔러 선생님'말고 다른 분이 첫 출근하던 날 내게 알려줬다. 도서관이라면 다 같은 도서관 소속의 정직원인 줄 알았지만 생각해보니 도서관이라는 기관 자체가 국가에서 세금으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용자로 도서관을 자주 다면서도 회사 같은 곳이라고 잘 못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도서관 안내데스크에는 9시에 출근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11시쯤 오는 분이 있으셨는데, 이 분이 '스토리텔러 선생님'이었다. 그들의 시스템에 대해 잘은 모르겠지만 어쨰꺼나 보통 두 분이서 교대로 했고, 주말은 또 다른 분이 계셨다. 정확히는 몰라도 교대근무에 그 주기도 매번 바뀌는 것 같았다.
스토리텔러 선생님은 매번 조금 늦게 출근하시다가 어느 날 아침 9시에 출근하셨다. 9시에 오셔서 덩그러니 앉아 있는 나를 보고 호기심이 생기셨던 모양이다. 나에 대해 궁금하게 많으셨던 스토리텔러 선생님은 쉬지 않고 말씀을 하셨다. 아니, 질문을 했다.
도서관에는 어떻게 오게 됐으며, 그 전에는 무슨 일을 했고, 가족은 몇 명인지, 이 도시에는 언제 살게 됐는지, 그 전 직장에서 퇴사는 왜 했는지, 그럼 도서관 오기 전에는 뭐하고 살았는지 등등등 한꺼번에 많은 질문을 해댔다.
나는 또 정직하게 대답했다. 희망일자리 모집공고를 봤고, 1순위로 도서관을 적어서 냈는데 운 좋게 됐다. 그전에는 웹 개발에 참여했었다. 남편과 둘이서 산다. 팀이 해체되면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실업급여를 받았다, 퇴직금도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등등등...
실컷 나에 대해 물어보신 이 선생님은 내 얘기 중에서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를 발견했다. 바로 '웹 개발'이라는 키워드였다. 그러고는 본인의 관심사 얘길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