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대장 Apr 30. 2021

끝나지 않는 도서관 단순 노동

그래도 즐거웠다

(서툰 이야기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시에 적어둔 일기를 보면서 제외시킬 문장들을 고르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심사 통과 후에 처음으로 매일매일 활발하게 글 쓰는 중입니다. 기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기록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4시간 동안 책에 양면테이프를 붙였다. 어제 도장 찍고 분류표 스티커 붙인 그 책이었다. 어제 하루 만에 다 할 수 있는 양이 아니란 것은 예상했지만, 오늘도 전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게 놀라웠다.


책 표지 앞, 뒷면에 펼쳐지는 날개 부분에다가 펼쳐지지 말라고 양면테이프로 고정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뒷면 날개 쪽에는 보안스티커가 또 붙는다. 


내가 앞, 뒤쪽에 모두 양면테이프를 붙이고, 다시 앞면에는 양면테이프의 겉 비닐을 벗겨서 날개를 표지에 딱 고정을 시켜서 사서 선생님께 넘긴다. 그러면 선생님은 뒷면 날개 안쪽에 보안스티커를 붙이고, 내가 발라놓은 양면테이프 비닐을 벗겨내서 날개와 표지를 고정시키고 다시 날개 부분 윗면에 책 대출 안내 스티커를 붙였다.


내가  안 도왔다면 이 일을 사서 선생님 혼자 했을 것이라는 데, 기가 막힐 만큼 숨 막히는 단순 노동이었다. 이 어마 무시한 양을 혼자 감당하고 계신다는 게 신기했다.


일이란 게 닥치면 닥치는 대로 하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코로나 덕분에 도서관 이용하는 사람이 그나마 적은 지금 같은 시기여서 그나마 많은 양을 하실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다행이라 여겨지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양이 엄청나다고 느껴졌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은 희망일자리 참여자인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1층 로비에 있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겨서 좋았다. 체온 체크하는 일은 무진장 지겨운 일이었으니까.


단순한 스티커 붙이는 노동이라도 감사하게 여기고 집중해서 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느새 후딱 지나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사서 선생님과 잠깐씩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다. 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나이를 잊을 만큼 즐거웠다.


양면테이프가 책 가장자리에 잘 붙을 수 있도록 조절하고 다시 떼고, 붙이고, 자르고... 스티커를 한참 붙이면서 속으로 든 생각은 내 평생 도서관에 와서 일해보다니, 그러니까 이런 과정에 대해 알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희망도서를 신청하는 일이 그저 재밌다고 느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공들이고 정성 들여야 하는 단순 노동 일을 시킨 꼴이 된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다.


손만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머릿속에서는 집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을 잔뜩 생각해낼 수 있었다. 손은 계속해서 움직여야 해서 속박되어 있다면, 생각은 자유로워서 더욱 오만 갖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큰 수확물로 재밌는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했다. 혼자 히죽거리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반드시 글로 남겨놔야지 까먹지 않도록... (다행히 글을 남겼구나! 과거의 나! 고마워! )


이곳에 와서 도서관 사정을 하나씩 알아가는 게 재밌고, 동종업계도 아니고, 연령대도 다르고,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사는지 얘기 듣는 것도 재밌다.


그동안 내 삶은 오로지 앞만 보고, 내 분야의 일에만 파묻혀 지내던 삶이었다. 그렇게 내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갑작스럽긴 했지만 잠시 떨어져 나와서, 내 일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다.


도서관에서 일할수록 나도 다시 내 업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커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오면 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