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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대장 May 04. 2021

빠르게 흩어지는 세상 속에서 존재의 중심을 잡기란

결국 나도 죽어서 사라질 테니까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책을 읽거나 책이 아니어도 신기한 잡지나 신문이나 뭐가 됐든 '읽을거리가 있다'는 것과 그러한 읽을거리를 '읽을 시간'이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내게 이런 행운이 생기다니... 앞으로의 인생에서 이런 행운이 생길 수 있을까? 일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하다. 그동안 내가 일을 한다고 하면 일만 해도 시간이 모자랐는데, 일 말고도 시간이 생기고 다른 무언가를 집중해서 읽을 시간이 생긴다는 것은 진짜 최고의 일자리라고 생각 들었다.


오늘 읽을거리는 "중학 독서평설"밖에 없어서 2019년 12월거 읽었다. '좀머씨  이야기' 소설이 실려 있었는데, 전편은 아니고 일부였다. 책의 뒤편에는 해설이 있었다. 해설을 읽으니 그제야 소설이 뜻하는 바가 조금 이해되었다. 성장소설이라는데  공감하지 못한 것은... 내가 소설 전문을 읽지 않아서겠지... 짐작해본다. 아무튼, 해설 읽기 전에도 다 읽고 나서 좀머씨에 대해  여운이 남는  소설이긴 했다.  


이런 시간이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코로나 덕분이라 생각들기도 했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의 문화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을 전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기능이 덜 활성화가 되어서 나 같이 단순 노동을 위해 온 사람에게는 일거리가 있다 없다 한다. 일거리가 없는데 사람을 고용한다는 것은 일반 회사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코로나 때문에 다들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코로나 이전부터 재택근무도 했고, 코로나 이전에 퇴사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안 보고 산지 꽤 오래되었고, 늘 집에만 있어서 잘 못 느끼고 살았다. 그러다가 도서관을 들락거리게 된 요새 들어서야 조금씩 코로나가 느껴진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 멈춰있는 도서관의 프로그램, 읽히지 못하는 책들을 보고있노라면 코로나 시대에서 내가 살고 있구나 하고 느껴진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시간 이후에 나는 개인 작업을 하거나 스마트 스토어로 들어온 주문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가끔 지인을 통해서 들어오는 일을 처리하고 돈을 받았다. 지금처럼 오전에 하는 일과 오후에 하는 일이 다를 때, 나는 나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직업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고 산 세월이 길어서 이 개념을 깨는 게 참 힘들었다. 직장에서 나오고, 직업에 대해 특정지어서 설명할 수 없는 지금을 맞이한 처음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내 인생을, 나의 존재를 단지 '직업'으로만 설명한다는 게 얼마나 좁고 작은 개념이었는지 깨닫는 게 어려웠다. 


존재에 대한 개념을 좀 더 넓혀 가는 것, 내가 생각했던 직업의 개념이 완전히 바뀌는 시점이 코로나 때문에 더 빨리 온 거 같기도 하다. 


직장도, 직업도, 사라지는 시대가 온다는데 정말 그렇게 될까? 그럼 무엇이 남을까? 사라지지 않는 '무엇'은 없겠지? 결국 나도 죽어서 사라질 테니까.


요즘 세상은 새로운 것이 빨리 나타나고 다시 또 빨리 사라진다. 빠르게 흩어지는 세상 속에서 존재의 중심을 잡기란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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