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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20. 2024

사십팔일. 로망

한 접시 아침



간밤에 아가 태동도 적어서 잘 잔 김에 얼려두었던 단팥빵 하나 먹으려다가 도로 집어넣고 한 접시를 채워보았다. 두툼한 식빵에 버터 한 조각 올려 발라 굽고, 짭짤이 토마토 하나 그리고 작지만 고소한 맛이 일품인 유정란 하나 꺼내 부쳤다. 마음에 들어서 사두고 세탁이 귀찮아 잘 안 꺼내던 테이블 천도 깔고 나니, 역시 대충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먹는 것보다 기분이 좋다.


이렇게 나를 위해 예쁘게 차려먹을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거야, 생각하면서 느긋한 식사를 즐겼다. 

예쁘게 못 먹더라도 나의 육아 로망 하나는 아이와 같이 요리하고 함께 먹는 것이다. 

영화나 광고에서처럼 따뜻한 햇살이 비춰 들어오는 주방에서 밀가루를 얼굴에 다 묻힌 채 웃는 아이와 눈 맞추는 장면, 빵을 굽고 과자를 만들며 오븐 속에서 구워지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는 장면 같은 거. 

알고 있다, 상상과 다르다는 것을.

 처녀 때도 간직했던 로망이라 어린 조카들이랑 피자도 만들고 공룡 모양 쿠키도 굽는 등 몇 번 해봐서 아이와 요리는 노동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안다. 서너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들도 하나같이 말한다. 가만히 둬도 아이는 집안을 뒤집어 놓는데 같이 요리가 웬 말이냐.


프러포즈 로망, 결혼식 로망, 신혼의 로망 등을 지나 이제 육아 로망. 로망을 가진다는 것은 실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면서 품는 최대치의 기대와 희망, 그 무언가를 지속할 힘을 함께 준다. 

언젠가는 내 아이와 온 주방을 난장판 만들어가면서 요리해 보고 로망이 깨지고 나서야, 그다음 로망을 또 만들어가겠지. 


어느새 나의 로망이 된 너,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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