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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령아 Feb 22. 2020

Living with Yourself

나의 분신이 생긴다면

때가 때이니만큼 원래도 바깥출입을 즐기지 않는 집순이인 나는 요즘 더더욱 집 안 생활을 즐기고 있다. 게다가 이번 주 내내 휴가여서 미뤄뒀던 방청소도 좀 하고 (아주 조금 했다는 것이 문제) 책도 보고 잠도 실컷 자고 쉬고 뭐 등등 꼭 나가야 할 일이 아니고서야 집 안에서 지내면서 행복해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도 남편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넌 안 나가고 집에만 있으면 평화롭고 여유 있고 행복해 보인다고. 나의 히키코모리(대체할 단어가 없어 그대로 씀) 기질이 어디 가나 싶다. 직업 상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 사람을 안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새로 하나 더 추가하여 시작하게 된 일은 심지어 재택근무다. (후후...)


아무튼 이런 말을 하려던 것은 아니고... 집 안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책도 있고 배민도 있고 (나에게 배달의 민족은 꽤 중요하다) 안락한 집도 있어야 하고 뭐 그렇지만, 넷플릭스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버렸다. 너무 중요함. 물론 넷플릭스가 없었다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책도 더 많이 읽었겠지만 꼭 책만이 새로운 생각을 주는 것은 아니니 이 정도 밸런스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요 며칠 보았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도 꽤 괜찮았다. 리빙 위드 유어셀프라고, 영어 원제를 그대로 한국말로만 바꿔놓은 드라마인데 우연히 넷플릭스 추천에 떠서 클릭하게 된 드라마였다. (넷플릭스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서 이런 드라마를 추천해준 건가 싶지만) 작년에 오픈된 시즌 하나가 전부고 총 8부작에, 각각의 회는 30-35분 정도로 짧아서 금방 보기 좋은 길이이다. 역시 드라마의 내용이 많이 포함될 예정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들은 이쯤에서 이 글을 읽는 것을 멈춰주셨으면 좋겠다.


드라마는 복제인간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마일즈라는 남자이고 (이 배우가 앤트맨의 주인공이라던데, 난 앤트맨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분명 빛나던 카피라이터이자 극작가를 꿈꾸던 남자였다. 최고의 카피라이터에게 주는 상인 ‘황금 펜슬상’도 받았다고 하고. 일에 찌들고 생활에 찌들고 사람에 치인 마일즈는 한껏 다크하고 우울해져서 뭐 하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어쨌든, long story short, 직장 동료에게 스파를 소개받고 그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복제를 당하고, 죽어야 했는데 운 나쁘게 깨어나서 마일즈가 두 명이 되었다.  


이 스파가 또 재밌었던 게 한국 남자 두 명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미국 드라마에서 한국인이 이런 식으로 그려진다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았고, 중간중간 남자들끼리 하는 한국말이 나오는데 그 발음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초반에 이 두 남자가 영어가 어눌한 척을 하는데, 이 또한 손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연기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작가의 상상일까 아니면 실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날까 문득 궁금하기도 했었다. 뭐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좋게 해석하자면 생물 복제 기술이 우리나라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나 보다 정도로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 이 부분에 대한 칼럼을 읽었는데, 2004년-2005년 사이에 일어난 황우석 박사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그렇게 설정한 것이지 인종차별주의자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고 함)


그렇게 마일즈는 두 명이 되었고, 8살 때 맹장수술을 했던 흉터를 제외하고는 유전자를 비롯한 기억이나 모든 것이 완벽히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원본 마일즈(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모르겠어서)는 이미 세상에서 닳고 닳았기 때문에 지쳐있는 상태인데, 새로 태어난 복제된 마일즈는 같은 유전자와 같은 기억을 가졌지만 전혀 때 묻지 않아서 해맑고 에너지가 넘친다. 덕분에 직장에서는 아이디어가 넘쳐서 일도 잘하고, 마음의 여유가 넘치니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자신감도 넘치고, 원본 마일즈가 자신을 돌보느라 급급해서 돌아보지 못했던 와이프에게도 다정하게 대할 수 있지. 당연히 사람들은 모두 복제된 마일즈를 좋아하고, 그는 원본 마일즈를 대신해서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중요한 프로젝트도 실행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런 설정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둘은 같은 유전자를 가진 같은 사람인데, 그리고 실제로 경험은 원본 마일즈만 했다고 할지라도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도 두 사람이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밝고 여유롭고 자신감 넘치고 친절한데 다른 하나는 피곤하고 지치고 우울하고 무기력하다. 결국 내가 너고, 네가 나인데 둘은 서로가 싫다.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복제된 마일즈가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원본 마일즈는 집에서 예전에 만들어놓은 극 원고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초반에만 좀 하더니 결국은 술 마시고 야동 보고 뭐 그렇게 다시 무기력한 생활을 하더라. 같은 마일즈인데 원본 마일즈가 써놓은 글은 지루하고 판에 박혀있는데, 복제된 마일즈가 수정한 글은 흥미진진하지. 원본 마일즈가 동생을 찾아가 모두가 복제된 ‘새로운’ 마일즈만 좋아한다며, 왜 자신은 행복해질 수 없냐고 화를 내며 하던 질문에, 동생이 “왜냐면 넌 노력을 안 하니까.”라고 답하는 것이 좀 마음에 남았다.


결국 사람이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고 살면서 어떤 경험들을 하느냐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선택을 하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밝고 활기차고 다정하고 친절하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부분도 분명 있는데, 너무 지쳐서 혹은 힘들어서, 다른 것을 살필  없을 정도로 우울하거나 불안해서 그런 장점들이  가려져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희망적인  마일즈의 와이프인 케이트는 초반에는 예전(결혼 초반의) 마일즈가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복제된 마일즈에게 끌림을 느끼지만, 그와 며칠 지내면서 그의 빛나는 모습에 오히려 불편해했다는 것이다. 힘들었던 기억, 같이 화내고 소리 질렀던 순간, 지쳐서 뾰족하게 굴었던 모습들을 모두 포함해 그들의 삶을 쌓아왔던 것이니. 아무리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같은 ‘경험 가지고 있지 않다면  둘은 결코 같다고   없다는 말로   풀어서 설명할  있으려나.


사실 나와 같은 사람이 둘 정도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다. 친한 동료 선생님과 몇 번 이야기를 한 적도 있을 만큼. 한 명은 집에서 하고 싶은 취미생활 및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다른 한 명은 공부하고, 다른 한 명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면 딱 좋겠다고. 같은 사람 세 명이 사이좋게 돌아가면서 그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고, 재밌을 것 같은 것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게 할 수 있으며, 쉬는 것도 마음껏 할 수 있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일 수는 있겠으나,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세 명이 있으면 그 셋이 의견이 달라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느라 서로 사이좋게 규칙적으로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겠다는 생각도 문득 드네. 평소에도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데, 그게 아무리 ‘나’라고 한들 그 말을 듣겠나 안 듣지.


아무튼 이건 좀 쓸데없는 말이었고,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고 어떤 과거를 거쳐왔는지보다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는가가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또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 아이디어 넘치고, 밝고, 활기차고, 친절하고, 또 다정한 마일즈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짜증스럽고, 뾰족한 마일즈가 될 수도 있는 거지. (물론 우울과 불안 및 그것에 파생되는 것들에 대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말은 아니다. 분명 기질적 취약성과 뇌의 작용과 기타 등등 개인이 조절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고 있는 건 질병으로 진단받을 정도가 아닌, 일반적인 삶에 지쳐있는 나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는 좀 “so, what?”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짧고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도 주었던 드라마였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은 드라마를 즐기고 싶다면 한 번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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