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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령아 Mar 03. 2020

Happy Ending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일

코로나 19로 온 세상이 혼란한 와중에 집순이 of 집순이인 나는 내심 명분 있게(?) 집에만 있을 수 있는 이 상황이 좀 좋기도 하다. (감염병이 도는 게 좋다는 건 당연히 아니고, 요즘은 나에게 아무도 "왜 밖에는 안 나가냐?"라는 질문을 하지 않아서 좋다.) 상담도 모두 취소하고 최소한의 출근만 하며 지금 상황을 지내고 있는데, 이렇게 지냈음에도 만에 하나 내가 감염이 되어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경로 확인 차 누군가가 그동안 어디에 갔었는지 물으면 "저... 집에만 있었는데요... 남편만 만났는데..."라는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아 왠지 혼자 괜한 수치심이 느껴질 정도다.


아무튼 책과 넷플릭스와 배민과 함께하는 요즘의 생활에 조금 전 읽은 한 작가님의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문득 떠올라 그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예상치 못한 순간순간을 마주했을 , 나에게는  배경음악 같이 머릿속에 흐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바로 가수 이적 씨의 '해피엔딩'. 아마도 처음 솔로로 앨범을 냈던 1집이던가. '레인' 타이틀인  앨범에 수록된 노래인데,  인기가 많다거나 사람들이 모두   법한 그런 노래는 아니었던  같다. 이적 씨는 패닉으로 처음 데뷔해서 " 왼손잡이야~"라는 노래를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관심은 자연히 카니발, 긱스  이적 씨가 함께한 모든 팀으로도 이어졌고, 솔로 앨범도 빠지지는 않았다.  앨범에서 사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타이틀인 '레인', 이제부터 이야기할 '해피엔딩' 아니고 ''이란 노래였다. (해피엔딩은 오히려 좋아하지 않던 노래 축에 속했다.) 그땐 한창  마음속에 가시가 많았나 보다.


아무튼 삶을 살면서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났을 때, 나에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배경음악이 항상 흐른다.


"삶은 길고 그렇게 쉽지도 않고~ 언제나 또 다른 반전~ 해피엔딩~ 영원히 간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바로 그 해피엔딩의 후렴구가 마치 나를 약 올리듯, 혹은 다독이듯 머리인지 마음인지 귓가인지 모르게 흘러나오는 것. 그럴 때면 나는 그 황당한 상황에 대거리를 할 에너지를 잃고 타이밍을 놓친 채, 그저 헛헛하게 웃고 만다. 그래,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노래의 가사는 그렇게 흘러간다.


신데렐라 결혼 일 년 만에 성격차이로 헤어져

평생 혼자 살았을지도 몰라

시비 걸자는 건 아니지만 혹시 둘이 만난 것이

평생 후회되는 일일지 몰라   


그렇다. 분명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여느 동화들처럼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라는 해피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그런데 정말 실제 신데렐라의 삶이 그랬을까? 정말 모든 동화들이 그러하듯, 그들은 과연 오래오래 '행복'했을까.


아마도 조금이라도 세상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설사 유치원생이라 할지라도) 삶이 그렇게 늘 행복한 순간만 있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해피엔딩? 그런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세상 삐딱하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이 노래는 그 해답까지 함께 준다.


신데렐라 결혼 일 년 만에 성격 차이로 헤어져

평생 혼자 살았다 할지라도

그건 알고 싶지 않은 맘 아픔이 뭔지 아니까

그저 해피엔딩 까지가 좋겠어


그리고 화자는 말한다. 대접 안에 가둔 물에도 자꾸 파도가 치고, 시곗바늘 돌고 돌면 다시 제자리로 온다고. 단순히 그저 어떤 노래의 가사일 뿐이지만 꽤나 실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 삶이 늘 그렇지.


그냥 삶은 그런 것 같다. 아무도 그 끝이 어떤지 미리 알 수가 없고, 지금 지나가는 힘든 상황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행복일지 고통일지 역시 지금 당장은 알 수가 없다. 기뻐했던 그 일이 지나고 보니 세상 고통일 때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나 하늘을 원망했던 일이 막상 지나고 보니 세상 감사한 일일 때도 있다. 그게 인생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늘 해피엔딩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지금 읽고 있는 모니터 너머의 누군가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단순히 해피엔딩으로만 끝나지 않는 그 아픔이 뭔지 아니까, 굳이 해피엔딩 이후를 솔직하게 사실대로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지.


삶은 길고 그렇게 쉽지도 않고

언제나 또 다른 반전

해피엔딩 영원히 간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


우리 각자의 삶이 순간순간 해피엔딩에 그래도 꽤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사 그 이후의 일들이 있더라도, 그 아픔이 뭔지 아니까 서로 조심스레 다독일 수 있었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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