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서글픈 인생 이야기
※ 본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일과를 마치고 저녁을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볼 영상을 고르다 우연히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82년생 김지영
책 수집이 취미인 나는 당연히 이 책을 가지고 있지만, 잠깐 읽다가 덮어두고 아직까지 끝까지 읽지 못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인 정유미 배우가 주인공이고, 공유 배우도 괜찮게 생각하는 배우 중 하나여서 꼭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만 하고 아직 못 보고 있었지만.
영화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출산하고 주부이자 엄마로서 일상을 사는 김지영 씨의 이야기이다. 오전엔 잠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집안일을 하고, 남편을 챙기고, 아이를 키우는 그런 일상. 그리고 그 김지영 씨는 많이 아프다. 아마도 산후 우울증이겠지.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아니, 많이 울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오열을 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그 인생이 전부 다 너무 짠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김지영 씨는 82년생에,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었다. 79년생 정대현 씨와 결혼을 했고, 임신을 해서 출산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26개월인 딸 아영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를 따뜻하게 돌보고, 남편을 살뜰히 챙기고, 시어머니 눈치를 잔뜩 보며, 집안일을 단정하게 하는 그런 사람. 분명 김지영 씨도 일을 계속하고 싶었을 테고, 매일매일 집에서 맞이할 전쟁 같은 육아와 집안일을 예상치 못했을 거다.
79년생 정대현 씨는 성실한 회사원에, 사람 좋은 혹은 마음 여린 남편이자 아빠이다. 와이프를 걱정하고, 고생 안 시키고 싶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다.
김지영 씨 장면에서 종종 등장하는 회상 씬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자란 누군가의 딸이라면 거의 다 경험했을 일들로 (그리고 그런 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오열을 했던 건 누군가의 딸 때문이 아니라, 하나같이 짠하고 마음 아픈 그 모든 등장인물들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도 분명 김지영 씨를 많이 걱정하고 아낀다. 지극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만 자기 아들이 더 소중할 뿐인 거지. 그리고 이건 너무 당연하다. 부모라면 당연히 자기 자식이 더 소중할 테니. 시누이도 무심하긴 하지만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정대현 씨는 나름대로 정말 애를 많이 쓰고 살아가는 가장이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마음만 끓이고 있었다. 애정에 더해서 자신과 결혼해서 김지영 씨가 아프고 불행하다는 죄책감과 미안함까지 가지고.
김지영 씨 아버지는 딸이 위험하고, 딸이 속상해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 얌전히 있으라고 한다. 방식이 잘못되었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딸을 지극히 사랑한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남자 형제들 공부시키느라 공부 못하고 일만 했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주부로 살았고, 이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김지영 씨에게 정말 따뜻한 엄마이고.
쭉 그렇게 길러졌으니, 자신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남편이 꼭 택시를 타라고 해도 꾸역꾸역 아영이를 안고 지하철을 타고, 시어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복직 소식을 기쁘게 알리는 김지영 씨가 나는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다. 복직을 하게 되어 신나 하는 김지영 씨에게 누구 앞길 막느냐고 소리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시어머니를 보며, 그 후 가라앉아 찔끔찔끔 새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아영이를 안고 설거지를 하는 김지영 씨가 너무 짠해서 울었다.
엄마가 김지영 씨를 안고 정서방 우리 딸 왜 이러냐고 할 때, 아들 한약을 지어온 남편에게 한약을 패대기치며 울부짖을 때 나는 엄마의 그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저런 엄마가 아니라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기에, 그 또한 서글프기도 했었다.)
와이프가 어떻게 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나랑 결혼해서 네가 아픈 것 같다고 우는 어린아이 같던 정대현 씨도, 참 네 그 감정과 책임마저도 어쩔 줄 몰라 무겁다고 김지영 씨한테 주나, 이 마음 여리고 어린 남자를 어쩌나 안타깝고 불쌍해서 또 울었었다.
누구도 이상하지 않고,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나쁘지 않은데, 모두의 인생이 참 서글프더라. 물론 인생이 원래 서글프다면 그건 할 말이 없지만,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참 많이 아팠다.
아이를 정말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져야지 생각을 할 때마다 늘 무거웠었다. 얼마 전 남편이, 내가 예전에 “나는 지금 아기를 갖게 되면 후회될 것 같고, 원망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했었다며, 그때 이후로 자신이 먼저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고 했었다. 백번 양보해서 육아는 함께할 수 있다고 해도, 임신과 출산은 오롯이 나의 몫이니까.
아이를 가지면, 그리고 낳으면 나의 삶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텐데, (물론 남편도 달라지겠지만) 남편은 그대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살짝 억울했던 적도 잠시 있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지속적으로 사회에 속한 일원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인 거지. 그래서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고 주부의 삶에 결코 만족하며 살 수 없을 내 성향을 잠시 원망하기도 했었다. 나도 그것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럼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이 영화와 책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으로 분류되어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리고 작가가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본 이 영화는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도 처절하게 아픈 일상을.
그리고 나는 그 아픔을 서로 좀 보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방식을 모르겠거든 상대에게 제발 좀 물어보고, 상대가 하는 이야기를 제발 좀 잘 듣고, 그렇게 이야기를 좀 나누면서,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싸우지 말고, 너도 아프구나 나도 아픈데, 우리 참 고생한다 하면서, 그렇게 가면 좀 더 낫지 않겠나. 그래야 각 사람도 조금씩 달라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도 조금씩 성장하지.
오래간만에 참 먹먹한 영화를 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