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도 여전히 집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설 이후부터 서서히 심각해진 코로나 19가 두 달 이상 지속되면서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나의 평소 패턴보다 온라인 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는데, 그중 정말 흥미로웠던 이야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저는 엄청난 집순이인데 막상 이렇게 오래 못 나가게 되니 너무 답답해요.
아마도 '집순이'라는 단어와 '오래 못 나가 답답하다'는 문장의 말미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참 흥미로웠던 것 같다. 가끔 글 쓰신 분이 너무 귀엽거나, 글에서도 답답함이 물씬 풍겨 나오면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집순이가 아니실 수도 있겠다."는 댓글을 달아보기도 하며, 새삼스레 '집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건 내가 가진 성별이 여성이기 때문에 '집순이'라는 통용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지, 여기에는 '집돌이' 역시 포함된다.)
이번 사태를 지나오며 나는 내가 '진정한' 집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한 것 같다. 정말 집순이 of 집순이랄까... 내가 사는 동네는 대표적인 주거지역 중 하나여서 주변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들도 많고, 오래된 아파트라 커다란 나무들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봄을 맞은 꽃놀이는 주방 창문 앞 꽃나무들로 대신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출근하는 길에 (나머지는 재택근무라) 차 안에서 벚꽃이며 목련이며 개나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진짜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출근하는 그때에도 사실 집에만 있고 싶다 (笑). 평소보다 활동량은 확연히 줄었지만 (원래도 잘 안 나가던 차에 더 당당히 안 나갈 수 있어서), 그래서 살이 찌고 몸이 찌뿌둥한 것을 제외하고는 참 만족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집순이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참 좋아해서 (돌아와서 집이 최고라고 매번 반복하는 게 함정이지만) 꽤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해서 그 부분은 좀 아쉬웠는데, 최근 발매된 게임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여행에 대한 욕구조차도 게임 속 캐릭터로 대신 해소하기에 이르렀다. (혹시 동물의 숲이라고 다들 아시나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해온 추억의 게임 ㅎㅎ) 게임 속 귀여운 캐릭터의 집을 해변 근처에 짓고, 집과 이어진 해변에 야자수도 심고 티 테이블도 놓고 캠핑용 침대도 놓아 그곳에서 바닷소리도 들려주고 하는, 남들이 보면 저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은 일들을 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달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날 때면 '와! 역시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들은 과연 무엇에 저렇게 답답함을 느끼는 것일까에 대해 혼자 추측을 해보기도 하며 지내게 된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자신을 평소 집순이 혹은 집돌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지금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계신다면 자신만의 이유를 말씀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지만 간혹 지금의 상황이 '너무' 불안하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글도 종종 보게 되는데, 그 역시 어떤 이유인지 참 궁금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근래에는 '불안'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하며, 나도 역시 불안이 참 높은 사람이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느끼는 그 불안의 형태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싶었다. 그러면서 뭔가 자연스럽게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이 떠올랐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하위 욕구들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이기 때문에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에 대한 불안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하긴 근데 매슬로우도 죽기 전에, 현대 사회는 이 욕구 위계 피라미드가 역삼각형이 되어야 더 설명이 잘 될 것 같다고 했으니, 어쩌면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니 이 무슨 의식의 흐름대로 쓴 문장의 연결인가.) 그리고 현재의 전염병 때문에 직장을 잃을 위험에 놓여있다거나, 당장의 생계를 위한 경제적인 부분에 위협을 느낀다거나 하면, 정말 기본적인 욕구들이 타의에 의해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 부분에서 너무 불안하고 힘들기도 할 것 같고. (프리랜서나 자영업자, 의료계통을 비롯해 고통받는 많은 직종의 분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 사실 저 역시도 프리랜서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내가 불안이 꽤 높은 사람임에도 막상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불안하지도, 슬프거나 우울하지도 않은 것 또한 좀 신선한 발견이었달까.
쓰다 보니 또 제목과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되어버렸다. 요즘 거의 아무 말 대잔치인 것 같은데(?) 다시 잘 정리해서 발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다지 생기지 않아 그대로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이 상황을 답답하고 힘들어하시며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그래도 조금 지나면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희망의 말을 전하며 글을 끝마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