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민원이 접수되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데에 유감을 표합니다. 본사의 방침은 이와 무관함을 알려드리며, 향후 이런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이 정도의 답변만 받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최악의 답변은 무대응, 혹은 책임 회피에 급급한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애써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봐야 내 속만 시끄러울 뿐. 그간의 숱한(?) 신고 이력으로 다져진 나름의 배포였다.
담당자에게 메일이 접수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지 이틀 뒤에 답변을 받았다. 메일함에 뜬 새 메일 표시, 그리고 처음 보는 이름. 제목은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내용을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감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OO기업 인사팀장 ***입니다.'로 시작되는 메일은 기대 이상이었다.
메일에는 내가 겪은 일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의 말과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경위, 차후의 구체적인 대응 등이 상세하게 담겨있었다. 아무리 삐딱하게 보려고 해도 결코 사무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정중한 태도였다.
그는 면접관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점에 대해, 그리고 노동부에 신고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나에게 사과의 연락을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고 했다. 녹취록을 읽고 면접관의 자세와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면접관에 대한 징계 처분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을 약속했다.
이만하면 사이다까지는 아니더라도 탄산수 정도는 마셨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징계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거기까지는 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여성이 더욱 일하기 좋은 회사, 가족친화적인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마지막 문장을 믿어보기로.
세상에 대한 기대가 아주 조금 돌아온 한편, 이렇게 상식적인 답변을 받기까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