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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4000개가 넘는 보도 매체가 있다는 사실, 저만 놀라운가요. 매체마다 하루에 기사 하나만 보도해도 매일 뉴스만 4000개 이상 나온다는 얘기죠. 물론 하루에 기사 하나씩만 보도하는 매체는 없어요. 어디 뉴스뿐인가요. 드라마, 예능, 영화, 유튜브 콘텐츠 등등 뉴스 말고도 쏟아지는 콘텐츠가 수십만 개는 될 거예요. 대체 뭘 봐야 잘 봤다고 소문이 날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차고 넘치는 콘텐츠들 속에서 건져 올린 뉴스들을 말이죠. 프로 ‘뉴스데스크’ 시청러가 직접 추천합니다. 이름하여 <내 맘대로 꼽은 MBC 좋은 보도상>입니다. 최근 10월과 11월 두 달 사이 인상 깊었던 보도들을 소개합니다.
10월 31일, 뉴스데스크는 머리기사로 <‘맥박’ 뛰고 있는데...헬기 못 태워 놓친 ‘골든타임’>을 내보내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발표한 새로운 진실을 정리합니다. 당시 해상에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학생 고 임경빈 군이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 응급 구조 헬기를 이용하지 못하고, 해경 경비정을 옮겨 다니다 사망 판정을 받은 일입니다. 헬기를 탄 건 위급한 임경빈 군이 아닌 해경 간부들이었습니다. 탐사기획팀은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먼저 <눈앞 헬기 있는데...“왜 경비정으로” 현장 ‘절규’> 보도에선 현장 영상을 단독으로 입수해 의문점을 공유합니다. 임경빈 군을 응급 처치하는 중에 헬기 소리가 나지만, 임경빈 군을 태운다는 말은 없습니다. 현장에선 임 군을 헬기가 아닌 경비정인 P정으로 옮겨야 한다는 말에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현장 구조대원들조차 수긍하지 못하는 결정이 이뤄졌다는 얘깁니다. MBC는 시청자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방법으로 이 같은 ‘보여주기’를 택했습니다.
11월 6일 탐사기획팀은 그때 헬기를 이용했던 해경 지휘부를 찾아 나섭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접 책임자들에게 묻기로 한 겁니다. <‘절박’했던 헬기 꼭 타야 했나...“뉴스 보고 알았다”> 보도엔 헬기를 이용했던 김석균 당시 해경 청장의 입장이 나옵니다. “몰랐다.”, 기자가 ‘진실을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나온 답변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캐물었습니다. ‘현장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을 인정하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건 침묵뿐이었습니다.
그리고 11월 13일, <“경비정 올 테니” 이해 못 할 방송...누구 목소리?> 보도로 세월호 특조위의 수사요청 대상인 해경 간부 4명 모두를 추적한 결과를 알렸습니다. 간부들은 MBC 탐사기획팀의 질문에 어느 하나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10월 31일 새로운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MBC 탐사기획팀은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 묻고 또 물었습니다.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답을 들을 때까지 묻는 그 과정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진실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고 진실을 내버려 두면 어떨까요. 책임져야 할 이들은 모르는 체 외면하고, 언젠가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지도 모릅니다. 뉴스데스크는 10월 31일부터 매주 임경빈군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의제를 되살리면서 진실이 나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단 말로 들렸습니다. 아직도 풀지 못한 그 날의 진실에 함께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모두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코로도 맡을 수 없는 방사능의 위험을 우리는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요.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후쿠시마를 ‘방사능 안전지대’라고 홍보하고 있는 데요, 11월 7일 MBC는 연속으로 리포트를 내보내며 ‘방사능 안전지대는 없다’는 사실로 정면 반박했습니다.
첫 보도는 <우려가 현실로…태풍 뒤 '세슘' 수치 치솟아>로,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가 후쿠시마 현지에서 측정한 방사성 물질 세슘 농도가 급증한 배경을 살핍니다. 지난달 태풍 하기비스로 흙이나 나무에 쌓인 방사성 물질이 흘러들어와 강물을 오염시키고 그 강물이 주변으로 넘쳐 오염물질이 곳곳으로 퍼졌다고 분석합니다. 전문가의 말을 빌려 ‘나무에 쌓인 방사능 물질은 기본적으로 제거가 안 된다’며 덧붙입니다. 이는 후쿠시마가 안전지대란 주장을 반박하는 하나의 근거가 됩니다.
주목할 건 현지를 직접 조사한 그린피스의 일침입니다. 뉴스데스크는 그린피스의 숀 버니 수석 원자력 전문가와 스튜디오에서 직접 대담합니다. “아베 총리에게 직접 한 번 마셔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방사능 오염 수치가 낮아졌다는 일본 정부의 대응에 숀 버니 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통쾌한 말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했습니다. 당장 내년에 올림픽이 열릴 개최국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린 바로 옆에서 오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요.
뉴스데스크는 이런 시청자의 입장을 대신해 질문하고 방사능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선 셈이죠. 물론 현재 많은 언론이 방사능 위험에 대해 보도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뉴스데스크냐고 질문할 수도 있죠. 유일한 주제의 보도는 아닐지 몰라도 새로운 사실을 더해 다시 강조하고, 또 직접 전문가에게 시민들이 궁금할 법한 질문을 하면서 심각성을 부각했어요. 이것만으로도 보도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보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진실을 밝혀야 할 일본 정부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압박이 가해지는 거예요.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 MBC는 주목할 만한 탐사보도를 내놨어요. ‘고교생 논문 저자, 어떻게 만들어지나’란 주제로 고교생 논문 작성 실태를 파고들었어요. 그 시작점은 10월 15일 <"내 자식이지만 너무 뛰어나"…"딸과 추억 만들려"> 보도입니다. 3개월 동안 탐사기획팀이 논문 250만 건을 분석해 고등학생이 저자인 논문을 추적했어요. 핵심은 그 논문들이 엄마나 아빠와 함께한 논문이었다는 것이죠.
리포트엔 구체적인 사례들과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겼어요. “유치원에서 숙제도 아빠랑 뭐 같이하고..” 자녀를 논문에 공저자로 올린 한 교수의 답변이었습니다. 논문에 별다른 기여가 없어도 자식이란 이유로 공저자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이게 왜 문제일까 궁금할 수도 있어요. 다음날인 16일 <4저자는 '동료 교수 아들'…그들만의 '상부상조'>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어요. ‘그들만의 상부상조’ 그러니까 교수 아빠를 두고, 교수 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는 얘기죠. 동료의 부탁으로 지인의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는 경우도 태반이었어요. ‘부모 마음에서 그랬다’는 한 교수의 답변에 연구 윤리를 찾아보긴 어려웠죠.
논문 중에는 무려 10년도 전에 자식의 이름을 올린 예도 있었어요. 왜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까, 그 답이 17일 보도로 나왔어요. <의도 뻔한데…"입시부정 확인 안 돼·징계도 안 돼"> 리포트에선 논문 부정이 드러나도 대학 차원에서 입시 자료를 보관하지 않아 입시 부정을 밝히기 어렵다고 꼬집었습니다. 사실상 고교생 논문 작성은 입시를 위한 용도로 쓰이는데 말이죠.
정부 제도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멍하니' 있다 가도 논문 저자…변질된 '노벨상' 플랜> 보도는 과학 영재를 키우겠단 명목으로 대학과 연계시켜 탐구 기회를 주는 ‘R&E 프로그램’을 지적했어요. 해당 프로그램으로 정부 지원을 받은 학교가 교수 부모를 찾아 공저자로 올리는 식의 입시 스펙 수단을 만들었다는 것이죠. 이렇게 뉴스는 문제를 발견해도 징계할 수 없는 제도의 빈틈과 변질된 제도의 허점을 짚으며 문제를 풀 단초를 제공했어요.
마지막으로 나온 리포트는 일종의 각성제였어요. 10월 18일 <"논문에 이름 하나 넣는 거야 뭐"…교수 양심은 어디로?> 보도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요. 한국의 학계에서 논문이 갖는 의미는, 또 연구 윤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도덕적으로 잘못된 거냐? 그건 아닌 거죠. 기회를 이용할 수 있어서 이용한 거고..” 동료 교수의 딸을 공저자로 올린 교수의 답변이었어요. 이 말을 들으니 우리 학계에서 연구 윤리라는 게 작동하긴 하는 걸까 싶어 허탈했어요. 결국 연구를 하는 당사자들의 각성이 없다면, 같은 문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죠.
그래서 이 탐사보도를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분명 문제가 맞으니까요.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이들부터 입시라는 길목에서 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하는 이들까지 모두에게 필요한 보도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사회가 달라지려면, 문제가 문제라는 걸 깨닫게 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이 보도들에 주목한다면 가능한 일이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들 보도는 모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취재를 통해 팩트를 발굴하는 수고로운 과정을 통해서 말이죠. 언론의 말할 자유는 바로 이 사실 발굴의 과정이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를 대신해서 진실을 좇아 묻고, 답을 찾고 알리는 일이죠. 좋은 보도들을 알리고 싶었던 건 앞으로의 뉴스데스크, 나아가 언론은 응원하기 위해서예요. 좋은 언론과 저널리즘이 어떻게 가능할까란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본 결과이기도 해요. 좋은 보도를 알아보고 찾아봐야 앞으로 또 좋은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문점, 방사능 안전지대란 허상, 그리고 고교생 논문 작성 논란까지. 모두 명확한 결론은 없어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해요. 이들 보도로 우리는 문제를 풀 출발점에 섰다는 것이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 같은 보도들이 힘을 얻고 앞으로도 계속돼야 해요. 오늘도 볼 게 넘치는 하루지만,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뉴스라면 잠깐 눈을 돌려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좋은 보도와 함께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요.
[세월호 참사]
10월 31일 <눈앞 헬기 있는데…"왜 경비정으로">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today/article/5573987_24616.html
11월 6일 <'절박'했던 헬기 꼭 타야 했나…"뉴스 보고 알았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82182_24634.html
11월 13일 <"경비정 올 테니" 이해 못 할 방송…누구 목소리?>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93489_24634.html
[후쿠시마 방사능]
11월 7일
<[단독] 우려가 현실로…태풍 뒤 '세슘' 수치 치솟아>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83641_24634.html?menuid=nwdesk
<'숀 버니' 그린피스 수석 원자력 전문가>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83645_24634.html?menuid=nwdesk
[고교생 논문 작성]
10월 15일
<"내 자식이지만 너무 뛰어나"…"딸과 추억 만들려">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7988_24634.html?menuid=nwdesk
<옆에서 구경만 하고 '4저자'…"솔직히 뭘 했는지">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7989_24634.html?menuid=nwdesk
10월 16일
<4저자는 '동료 교수 아들'…그들만의 '상부상조'>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9741_24634.html?menuid=nwdesk
<박사과정과 고교생의 합작?…'배후'에 부모 있다>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49743_24634.html?menuid=nwdesk
10월 17일
<의도 뻔한데…"입시부정 확인 안 돼·징계도 안 돼">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51390_24634.html?menuid=nwdesk
<'멍하니' 있다 가도 논문 저자…변질된 '노벨상' 플랜>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51392_24634.html?menuid=nwdesk
10월 18일
<"논문에 이름 하나 넣는 거야 뭐"…교수 양심은 어디로?>
http://imnews.imbc.com/replay/2019/nwdesk/article/5553383_24634.html?menuid=nwde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