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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ong Aug 11. 2021

불합격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불합격'이다. 보는 순간 허탈해선 온 기운이 빠진다. 전형 단계별로 따져봐도 수십 번 넘게 봤는데 도통 면역이 생기질 않는다. 때릴 테면 때려봐라 호기롭게 덤벼보지도 못한 채 지고야 만다. 뭣도 아닌 저 세 글자에. 실은 굉장히 큰 세 글자다. 불합격은 그간의 내 노력에 먹물을 끼얹고, 자기 비하를 부르며, 떠올릴 때마다 분노와 슬픔을 글자 그대로 느끼게 한다. 난 불합격이 정말 싫다. 


합격을 기대했다. 이쯤 하면 되지 않았냐고 원망도 해봤다. 이제야 나의 필기 답안엔 분명한 패인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에 완벽한 시험 답안이 어디 있냐며 따져 묻고 싶었다. 내 답안을 뽑아주지 않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채점관에게. 


시험을 보러 가는 아침부터 아찔했다. 집에서 1시간 넘게 걸리는 정반대 편에서 시험을 봤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지하철 노선이 두 갈래로 나뉘는 것도 몰랐다. 엉뚱한 노선으로 가다가 입실 시간 20분을 남겨두고선 부랴부랴 택시를 탔다. '빨리 가달라' 부탁하는 내게 택시 기사는 '괜찮다'며 제 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안심시켰다. '오늘 시험장 가는 데 액땜했으니 시험 잘 볼 거라'며, 아쉽게도 아저씨의 말은 빗나갔지만 감사했다. 덕분에 긴장을 덜었다. 


며칠간은 악몽을 꾸면서, 또 새벽 3-4시까지 벼락치기를 반복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시험 문제가 나왔다. 그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 시험에 집중해도 모자랄 시간에 정신을 놓치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시험장엔 늘 '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마음으로 들어간다. 그 주문이 그날은 애석하게도 통하지 않았다. 당황한 만큼 시간을 허비했고, 실력의 실 자도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모두에게 어려웠을 거라며 평균이라도 되길 바랐다. 그걸 '운'이라는 말로 퉁쳤다. 


시험이 끝나고선 허무했다. 긴장됐지만 고대했던 시험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했단 생각에 괴롭기도 했다. 한편으론 간절했는데 왜 더 하지 못했을까, 왜 그 주제를 공부하지 못했을까 후회도 했다. 그런다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생각을 그치지 못했다. 쉬는 내내 몸은 늘어졌지만 머릿속은 분주했고, 그래서 피곤했다. 결과를 기다리며 일주일 간은 올림픽 경기만 보며 버텼다. '기적'을 바라면서, 선수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빙의해가면서.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하필이면 재택 아닌 출근날에 결과가 나왔다. 회사에선 차마 확인할 수 없어 회사 밖으로 나온 후에야 결과를 확인했다.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고개를 숙이고 한강을 건너는 순간엔 그냥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낼까 싶었다. 아무리 원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한강을 바라보며 나쁜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그동안 많은 응원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다. 친구들도, 가족도, 심지어는 회사에서도 시험 준비를 응원한다. 내가 슬픈 이유엔 응원해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그럴 때면 더 큰 응원을 보내주기에 다시 힘을 내지만, 쓰린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그래서 이대로 포기할 거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이만큼 하면 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내가 정말 '이만큼' 한 건 맞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언제 올지 모르는 '운'의 때를 기다려보는 게 어떠냐고 한다면 대체 언제 오는 건지 묻고 싶다. 지금은 세상이 끔찍하게 밉다. 


터널은 언제 끝이 날까. 지금까지 너무나 순탄해서 인생이 스토리 좀 만들라고 고난을 주는 걸까. 서사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이만하면 터널이 끝날 때도 된 게 아닌가. 아무래도 나는 포기하지 못해서 불합격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네까짓 세 글자한테 지기 싫다는 푸념이다. 나는 이제 억울해서, 분해서 못 그만둔다고.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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