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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살기 Feb 09. 2023

첫 강의의 아찔한 기억

낯가리는 사람의 인생 첫 강의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앉아서 공부하던 강의실에서 이제는 후배들을 위해 강의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2016년 3월 4일 금요일 오후 1시.


강의명은 조세법개론이었고, 강의내용은 국세기본법과 부가가치세법이었다.

평소에도 예민한 편이라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일을 할 때도 집중을 위해서는 속을 비우는 편이 더 일하기 좋았다. 그래도 강의는 다음날 점심이었기에 조금은 먹어보려고 전날 저녁으로 죽을 먹었는데,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인지 보기 좋게 체해버렸다. 체하는 바람에 강의준비는 커녕 몸을 회복하는 것도 힘들었고, 다음날 아침에서야 그간 준비했던 강의자료를 리뷰하는 정도로 훑어보았다.


강의시간 20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해서 강의를 준비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자리에 앉아 교수님이 안 오시기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던 나였다.

그날은 반대의 입장에서 교탁 옆 컴퓨터에 앉아 학생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1시가 되고, 교탁으로 가 출석부를 꺼내 출석을 불렀다.

출석을 부를 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뭐지, 저 사람은 누군데 출석을 부르고 있지?'

'교수님 휴강인가?'


아주 다양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때 나이가 34살이었으니, 학생들이 보기에도 교수나 강사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본래 얼굴이 검은 편인데, 전날 체한 탓에 허옇게 보이는 효과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렇게 3시간이라는 강의를 마치고, 복기를 해보려 했는데 내가 뭐라고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강의안은 제대로 넘겼는지, PPT 자료에 오타는 없었는지, 농담을 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농담을 했는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기억이 1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강의실을 빠져나오는데, 누가 나를 불렀다.


'형! 나 이 강의 들어요.'


맙소사, 아직까지 내가 알던 후배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안 그래도 수업 때문에 멍해진 머리를 그 후배가 한 번 더 때렸다. 돌이켜보면 그 후배 덕분에 수업준비나 멘트 등 강의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학생들이 어떤 걸 힘들어하고, 특히나 어려워하는 파트가 어느 부분인지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첫 학기의 강의평가는 정말 최악이었다.


첫 강의에 대한 평가내용 중 일부


아주 혹평일색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응원해 주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나의 첫 강의에 대한 평가는 아주 냉정했다.


모름지기 강사라면 본인 스스로가 잘 가르친다고 생각해도, 받아들이는 청중의 입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사실 첫 강의를 준비하면서, 강의안과 나름의 강의방식에 꽤나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만족할만한 강의라고 생각하지만, 청중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분명 고 칠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판서는 항상 보는 사람을 중심으로 두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지금은 강의과목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매 학기 강의안을 바꾸고 강의내용을 고민하며, 무거운 수업시간을 환기할 만한 농담을 생각한다. 듣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강의는 편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매 시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청중을 만족시키기 위한 강의를 준비해야 한다.

만일 첫 강의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받지 못했다면, 내가 지금 저 자리에서 강의를 할 수 있었을까?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금 새겨볼 수 있던 나의 첫 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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