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란 Sep 14. 2023

감동을 주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필사적인 필사일기 -<감동을 주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 사람들은 우리를 볼 때, 우리와 주류를 구분하는 소수자성에 주목한다.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우리는 라벨링 되고 분류된다. 내가 무엇을 성취하든 사회는 그곳에서 '장애인'으로서의 성취를 본다. 그러나 우리의 소수자성은 단지 우리 삶의 일부일 뿐이다.


- 그 시선에는 시혜적 태도만이 있을 뿐, 정말로 우리의 삶은 '보통의 사람들'과 동등한 궤도에 올려놓으려는 태도가 없다. 우리는 남들과 같은 삶의 수준을 누린다는 이유로 칭찬받고 싶지 않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도전이고 용기이며, 또 누구에게나 지극히 당연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 우리의 일상을 특별히 일컬어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위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그들을 위해 '소비하는' 방식이다.


- 우리의 앞에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극복하고'를 붙이는 대신에, 어떻게 그 수식어를 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 살고 싶다. 그건 그렇게 대단한 꿈이 아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 - 김초엽 학생의 글

출처: https://univ20.com/58408




김초엽. 최근 알게 된 이 작가의 글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흥미로운  문장들 너머  글쓴이가 궁금하여 조금 더 오래된 흔적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가 대학원 석사과정 때 쓴 글을 만났다. 유명해지기 전에 쓴 글이라서 더 기대가 되었다. 불쑥 나온 단어, '청각 장애'. 나는 이 단어를 보자마자 흠칫 놀라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 완벽한 그녀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역시'라는 부사를 연거푸 내뱉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부끄러움이 튀어나와 어쩔 줄 몰랐다. 

[청각장애를 가진 학생인데,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이런 대회를 참가한 것을 칭찬하고 싶어요."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랬다. 글의 제목에서 '장애'라는 단어를 보자마자 나는 이미 어떤 찬사를 보낼지 준비하고 있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성공담을 통해 그들의 노력과 성취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들의 핸디캡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애초부터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회라면 어땠을까. 몇몇 역경의 주인공들이 찬사를 받는 드라마 대신 많은 이들이 시도하고 성취하는 기쁨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말에 부끄러운 얼굴을 바닥에 떨궜지만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생각해 보면 다행이다. 작가가 의도한 "작은 균열"이 나에게 닿아서 참 다행이다. 장애를 향한 시선을 극적인 서사의 감동으로 소비하며 보내지 않을 기회니까. 소수성을 배제한 또렷하고 순수한 평가와 응원을 보낼 기회니까.


완벽한 세상은 없다. 다만 어느 누구의 울퉁불퉁한 삶도 불필요한 문턱만 없으면 저마다의 길이 될 테니. 나는 그저 다음 행인을 위해 문턱을 밟고 다듬으며 지나갈 뿐이다. 작은 균열은, 모든 것이 지나갈 수 있는 평평한 길을 만드는 시작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출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