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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란 Sep 09. 2023

세상에서 가장 나쁜 출근

필사적인 필사일기 -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지음

거짓말이다.

내가 왜 이런 몸무게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앞서 고백한 나의 만성질환(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안구건조증) 외에도 내가 앓고 있는 고질병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야간 식이 증후군'. 이미 온 국민에게 상식 차원의 병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야간 식이 증후군은, 나의 생활 리듬을 설명해 주는 가장 명료한 단어다. 퇴근을 한 뒤 서너 시간 남짓 회사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 다 된 시간. 씻고 침대에 누우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허기가 몰려온다. 자제해야지, 오늘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마음먹어본다. 하지만 애써 눈을 감아도 허한 느낌 때문에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허기를 달래 줄 간단한 견과류나 따뜻한 우유 혹은 삶은 달걀을 섭취하면 된다고? 나라고 안 해 봤겠는가. 아몬드 열 주먹을 입안에 쑤셔 넣는다고 한들 산불처럼 번지는 이 허기를 해소할 수는 없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어 배달 앱을 켜고 만다. 오늘의 메뉴는 순살 반반 치킨. 50분 뒤 내 방안에 찾아드는 고소한 기름의 향. 고독하고도 따뜻한 인생의 맛. 도대체 내가 왜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시껄렁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치킨 한 마리를 해치우면 비로소,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잠이 오기 시작한다. 지금 바로 누우면 어김없이 위산이 역류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는 없다.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출근도 어림없을 테니까. 나는 기어이 침대에 눕고 만다. 내일 밤은 기필코 굶고 자야지, 생각하면서.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박상영 지음 '01 출근보다 싫은 것은 세상에 없다'




먹는 이야기를 써보자는 다짐 덕분에 음식이 나오는 책들을 마치 한 입만 맛보듯 미리 보기를 하며 깨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고른 책은 박상영 작가님의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첫 화에서 작가님이 언급한 '야간 식이 증후군'은 사뭇 낯설었지만 읽다 보니 나 또한 한때 이 병을 앓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해 지기 전보다 해가 진 후에 더 많이 먹던 이유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출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책을 어쩜 이렇게 재밌게 쓰실까- 감탄을 하면서도 즐거운 감상 뒤에 걱정이 밀려온다. 난 분명히 <절제식단과 균형 잡힌 루틴을 좋아하는 직장인의 치팅데이>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는데, 체험 독서라는 핑계로 책에 소개된 간식을 탐내는 바람에 <스낵 없이는 살 수 없는 직장인의 반성문>을 쓰게 될까 봐 몹시 두려운 상태다. …... (지금도 커피 옆에 베이글 있음….)


사진: UnsplashGreta Schölderle Mö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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