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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May 18. 2020

길 위에서... 세상에 어떤 선택도 가벼운 것은 없다.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고 어떤 선택이라도 후회는 따르겠지만..

일단, 그 날은 길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 중 하루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적어도 다섯 손가락에는 들어간다.) 생각컨데 모든 부분이 이렇게나 꼬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 길에서 하나하나 내렸던 결정과 선택은 기가막히게도 모두 빗나갔다.


일단 사전에 계획된 코스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다. 강화도의 미꾸지 고개라는 곳을 출발, 강화도 명산 중 하나인 고려산까지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간 후, 정상의 미군부대 뒷쪽으로 난 길을따라 고비고개로 내려가 다시 혈구산을 치고 오른다. 혈구산 정상에서 퇴모산을 지나 외포리로 내려온 후 물회 한 그릇!!! 


가 본적이 없지만 대략적인 부분을 나름은 충분히 파악하였고 예상 거리나 고도, 소요시간 등도 체크하였다. 일단 혼자 걷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과 더불어 강화도의 명산 중 두 곳 (고려산과 혈구산)의 정상을 오른다는 것도 기대가 되었다.


차량을 미꾸지고개 앞의 슈퍼 공터에 주차했다. 일단 이 슈퍼에서 시원한 음료수 등을 구매하려 했는데 아뿔싸, 카드가 안 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이체를 해 주겠다고 해도 나이드신 어르신은 결단코 현금만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이체하고 화면을 보여주겠다고 해도 당신은 그런 것을 볼 줄 모르신단다. 그렇다면 인근 편의점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10여분만 차로 움직이면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서 구매후 되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눈에 뭐가 씌였는지 나는 가방안에 넣어져 있던 예전에 산 물과 간식으로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굉장히 더운 날이었음에도 그 정도면 조금만 참고 내려와 외포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음료수를 먹을 것이라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시작은 여하간 참으로 좋았다.>

그렇게 기분좋게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 전망 좋은 곳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고려산의 정기를 듬뿍 받고 정상께에 도달한 순간, 분명 혈구산 방면으로, 지도상에는 표기되어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곳은 내 키를 뛰어넘는 풀들이 엉켜있는 '초(草)의 장막'이었다. 당황스러워 난감해 하며 앉아 쉬노라니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어르신이 마침 자신도 그 쪽으로 내려가려고 하니 따라오라면서 앞장서신다.


어디로 가나 보니 그 풀 숲으로 그냥 몸을 던진다. 풀 자체를 뚫고 걸어가는 것이다. 


"원래 길 맞아. 풀이 자라서 안보일 뿐이지."


어이쿠... 그래도 길이 맞다는 말씀에 용기백배하여 그 뒤로 같이 몸을 날린다. 제초가 되어있지 않은 구간은 약 50여 m 정도 뿐이었고 이후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고비고개에 도착하여 다시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을 치고 올라 혈구산에 다다르니 어느덧 온 몸이 땀에 다 젖었다. 충분히 목을 축였지만 1/3 정도 남은 물을 바라보다가 어떤 포스팅에선가 "쭈욱 내리막"이라는 글을 보았기에 다시 가방에 담기가 귀찮아 시원스레 마셔버렸다. 예상 시간은 두어시간, 편한 내리막이라니 그 정도야 충분히 물 없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습기가 엄청났던 그 더위 속, 예상외로 발걸음은 더뎌졌다. 그리고 길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향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 안에서 꽤나 오르내림을 반복했다. 


점점 지쳐가고 목이 말랐다. 그래도 어느덧 아까의 어르신이 가르쳐 준 외포리 방향 표지를 보고 큰 이상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모든 여정의 90%가 끝나가던 그 때, 나는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저 퇴모산 후반부의 녹색의 등산로는 실재하지 않았다.>

너무 위성지도 상에 나타난 등산로만 믿었던 탓이다. 어느순간 등산로는 완벽히 사라져 있었고 나는 온 몸으로 가시나무와 잡초를 뚫고 있었다. 아무리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해도 도저히 길이 없었다. 


'물론 길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길'의 흔적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 주변 어딘가에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온갖 방향으로 진입을 해 보았다. 위성이라는 것이 크게는 몇 m에서 많게는 수십 m까지 오차가 있는 법인지라 나름 주변을 뚫고 좌우로 나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탈진했다. 약 한 시간 이상을 반경 300m도 안되는 야산지대를 종횡무진으로 들쑤시다가 완벽하게 퍼져버렸다. 괜시리 목이 마르지도 않았건만 기세좋게 마셔버린 그 물이 미치도록 그리웠지만 30도의 날씨 속에서 분주하게 거친 야산을 뚫고 오르내린 나는 어느새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한들 여기서 '항복'을 외친다고 산신령이 나타나서 대충 꾸짖고 공중부양으로 데려간다던가 정확한 경로가 땅 위로 표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길을 잃기 전까지의 장소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약 10여분을 다시 올라갔다가 '아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갈 체력이 있다면 차라리 이 산을 뚫고 내려가는데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되돌렸다.

<나중에 다시 찾은 산. 바위에 쓰인 화살표로 나아갔어야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길을 잃기 시작한 지점은 바로 위의 사진이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바위위에 스프레이로, 혹은 리본으로 외포리 방향을 오른쪽으로 안내하였다. 심지어 그 길은 로프난간까지 잘 설치된, 제대로 된 등산로였다. (위성지도에 안 나왔을 뿐이다...)


나는 그저 묵묵히 땅을 보며 걷다가 오른쪽으로 빠지지 않고 직진을 한 것이고, 길이 사라질 즈음에도 '이 부분은 제초가 영...관리 부실이네...'하고 올곧게 지나간 것이다. 위성지도를 믿고.


그 당시 다른 이의 등산 트립을 다운로드 받았다면 해결될 일인데 나는 묵묵히 '지도는 틀리지 않는다.'라는 굳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름 수 없이 길을 다녀 본 내 신조 중 하나는 '절대 지도를 믿지말라'와 '현장에 가 봐야 알 수 있다.'이다.) 


또한 길을 잃을 곳까지 거슬러 올라간 후 뒤만 돈다면 바로 저 바위를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기가 막히게도 저 바위를 목전에 두고, (그 바위를 바로 몇 m 앞에다 두고) 그 몇 m를 더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거슬러 올라갈 체력이면 차라리 내려가는데 쓰자...'고 한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과거에 나처럼 그 구간에서 길을 잃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수 많은 이들이 보기 흉하게 바위에 스프레이를 그려댄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나 리본을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그 나뭇가지에 리본을 단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 갈림길에서는 말이다. 


어느덧 갈증은 극에 달했고 더이상 침도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앉아서 고개를 숙이는데 머리가 멍해지더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잠시 쓰러진 채로 나는 진지하게 119를 누를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온 몸으로 그냥 산의 모든 것들을 헤치며 꺾고, 밟고, 뛰어내리면서 그저 그 등산로의 선, 마을의 방향 만을 믿고 나아갔다. 여태 걸어온 6시간의 몇 배에 달하는 지옥같은 1시간, 그리고 그 지옥같은 1시간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던 내리막길을 '개척'하여 내려가다 꽤 잘 다듬어진 묘지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묘지를 따라 난 오솔길을 통해 그 허망한 녹색 선이 끝나는 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마당의 수돗물로 목을 축였다. 모든 진기를 다 쏟아내었기에 그 외포리까지 약 3km의 길을 걷기에도 힘들었다. 결국 마침 외포리로 나가신다는 (제초기를 실은) 트럭의 뒷칸에 올라타 외포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무지에 의한 고생도 추억으로 넘길 때가 되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날을 그렇게까지 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꽤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먼저 정확한 사전조사로 미꾸지고개의 슈퍼가 현금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리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샀거나 현금을 준비해가서 현지에서 샀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와 순조롭게 진행해도 약 2시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혈구산 정상에서 '귀찮다는' 이유로 물을 억지로 다 마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도가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것을 더 빨리 포기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갔다는 말이지?'하고 타인의 트립 기록을 다운로드 받을 생각을 했었더라면 조금은 더 빨리 위기를 모면했을 것이다. (블로그의 등산기에는 이 갈림길 부분에 대한 주의를 적어놓은 분들이 거진 없었음을 볼 때엔, '100명 중 1명이나 헷갈릴 그런 길'에 내가 바로 그 1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니 할 말이 없다.)


혹은 거슬러 올라갔을 때에 그 길을 잃은 초입을 눈 앞에 두고 몸을 되돌리지 말고 그대로 올라가서 '자아 여기까진 분명 제대로 왔고...'하고 체크했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뭐, 사실 '그냥 날도 좋은데 집에서 퍼질러 있지 뭐...'했다면 더더욱이 앞선 모든것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하루는 정말 대단한 것을 배운 날이었다. 지도의 신뢰성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과 내가 예상하는 거리와 시간은 그저 내가 예상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내 체력은 역시나 저렴하기 짝이 없다는 것.


사실 위의 것들을 다 합친듯한  깨달음이 있으니 '모든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온 몸으로 책임지게 된다.'는 것이다. 

<꽃길만 걸을 수 없다. - 정읍시 정읍사오솔길에서>

간단한 트레킹에서도 이런 수 많은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건강, 안전, 행복 등이 정해지는 법인데 지금까지의 나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선택들을 통해 지금의 모습과 위치에 도달했을까? 


'이 길보다는 저 길로 가자'라는 선택은 인생에 비유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가지는가? 


대부분의, 아니 전적으로 모든 선택은 인생에 있어서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을 가져온다. 내가 그 전공이 아닌 이 전공을 했더라면...하는 부분도 되돌려 다시 시작한다면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 경제 행위가 가능한 나이로 따진다면 약 1/40 이상에 해당하는 부분을 날려버리는 셈이다. 


사회에서는 내가 왜 그 때 강하게 연봉 협상을 선택하지 않았지? 라는 후회로 1년동안 같은 연봉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내가 왜 그만두지 못했지? 라는 회한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10년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내가 왜 그 제안을 거절했지? 라는 한탄은 기대비용, 기회비용을 계산하면 수천만에서 억에 가깝거나 그것을 넘기도 한다. 거기에 사회적 위치와 만족감은 별개이다. 그 커다란 덩어리를 날려버리고 술 한 잔에 '그런 제안도 받았던 사람이야~!'하고 외친들 누가 그 술 값을 내주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 사회에서의 관계... 그 모든 것에 우리는 지금도 다양한 선택을 한다. 물론 게임이 아니기에 리셋 버튼은 주어지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을 시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지도 어떻게 변했을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요는 하나다. 그 선택을 하기 전 굉장히 많이 생각해보고 양 손에 쥔 것들을 통한 가능성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게 나중에 가서 영 좋지 않은 패가 되더라도 후회는 없도록, 정말 많이 고민하고 다양하게 대입해보고 비교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감하게 강제로 밀어붙일 때'나 '최대한 안전하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히 짚어 나아가야 할 때'를 정해야 한다. 적어도 내 인생, 내가 마음대로 버무릴거야! 하고 외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



이후 지리정보팀장과 다시 찾았던 그 산과 그 구간은 지독히도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 바위를 손가락질하며  너무 끔찍했던 기억을 웃어 넘길 수는 있었지만 그 때 왜 그렇게 멍청하게 잘못된 선택만 했을까? 하는 후회는 짙어져만 왔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이제 벌써 마흔셋이고 인생에서 여태 해왔던 선택만큼의 선택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손쉽게 나오는대로 내뱉고 기분에 따라 정할 것인가, 혹은 단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본 후 정할 것인가에 따라 온 몸으로 뒤집어쓰게 될 결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길을 걷는다는 것이 인생과 비슷하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분들에게 듣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거짓은 분명 아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몸에 새겨졌건만 이제사 길을 걸으며 느끼게 되었으니 이 또한 모자란 내 탓이다.


참으로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가야할 길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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