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고 어떤 선택이라도 후회는 따르겠지만..
일단, 그 날은 길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 중 하루였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적어도 다섯 손가락에는 들어간다.) 생각컨데 모든 부분이 이렇게나 꼬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 길에서 하나하나 내렸던 결정과 선택은 기가막히게도 모두 빗나갔다.
일단 사전에 계획된 코스 자체는 별 것이 아니었다. 강화도의 미꾸지 고개라는 곳을 출발, 강화도 명산 중 하나인 고려산까지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간 후, 정상의 미군부대 뒷쪽으로 난 길을따라 고비고개로 내려가 다시 혈구산을 치고 오른다. 혈구산 정상에서 퇴모산을 지나 외포리로 내려온 후 물회 한 그릇!!!
가 본적이 없지만 대략적인 부분을 나름은 충분히 파악하였고 예상 거리나 고도, 소요시간 등도 체크하였다. 일단 혼자 걷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과 더불어 강화도의 명산 중 두 곳 (고려산과 혈구산)의 정상을 오른다는 것도 기대가 되었다.
차량을 미꾸지고개 앞의 슈퍼 공터에 주차했다. 일단 이 슈퍼에서 시원한 음료수 등을 구매하려 했는데 아뿔싸, 카드가 안 된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이체를 해 주겠다고 해도 나이드신 어르신은 결단코 현금만 된다며 손사래를 치신다. 이체하고 화면을 보여주겠다고 해도 당신은 그런 것을 볼 줄 모르신단다. 그렇다면 인근 편의점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10여분만 차로 움직이면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서 구매후 되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눈에 뭐가 씌였는지 나는 가방안에 넣어져 있던 예전에 산 물과 간식으로 충분히 걸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굉장히 더운 날이었음에도 그 정도면 조금만 참고 내려와 외포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음료수를 먹을 것이라 자신만만했던 것이다.
그렇게 기분좋게 땀을 뻘뻘 흘리며 나름 전망 좋은 곳에서 인증샷도 찍었다. 고려산의 정기를 듬뿍 받고 정상께에 도달한 순간, 분명 혈구산 방면으로, 지도상에는 표기되어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곳은 내 키를 뛰어넘는 풀들이 엉켜있는 '초(草)의 장막'이었다. 당황스러워 난감해 하며 앉아 쉬노라니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어르신이 마침 자신도 그 쪽으로 내려가려고 하니 따라오라면서 앞장서신다.
어디로 가나 보니 그 풀 숲으로 그냥 몸을 던진다. 풀 자체를 뚫고 걸어가는 것이다.
"원래 길 맞아. 풀이 자라서 안보일 뿐이지."
어이쿠... 그래도 길이 맞다는 말씀에 용기백배하여 그 뒤로 같이 몸을 날린다. 제초가 되어있지 않은 구간은 약 50여 m 정도 뿐이었고 이후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따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게 고비고개에 도착하여 다시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을 치고 올라 혈구산에 다다르니 어느덧 온 몸이 땀에 다 젖었다. 충분히 목을 축였지만 1/3 정도 남은 물을 바라보다가 어떤 포스팅에선가 "쭈욱 내리막"이라는 글을 보았기에 다시 가방에 담기가 귀찮아 시원스레 마셔버렸다. 예상 시간은 두어시간, 편한 내리막이라니 그 정도야 충분히 물 없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습기가 엄청났던 그 더위 속, 예상외로 발걸음은 더뎌졌다. 그리고 길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향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 안에서 꽤나 오르내림을 반복했다.
점점 지쳐가고 목이 말랐다. 그래도 어느덧 아까의 어르신이 가르쳐 준 외포리 방향 표지를 보고 큰 이상없이 전진할 수 있었다.
모든 여정의 90%가 끝나가던 그 때, 나는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
너무 위성지도 상에 나타난 등산로만 믿었던 탓이다. 어느순간 등산로는 완벽히 사라져 있었고 나는 온 몸으로 가시나무와 잡초를 뚫고 있었다. 아무리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해도 도저히 길이 없었다.
'물론 길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길'의 흔적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이 주변 어딘가에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온갖 방향으로 진입을 해 보았다. 위성이라는 것이 크게는 몇 m에서 많게는 수십 m까지 오차가 있는 법인지라 나름 주변을 뚫고 좌우로 나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탈진했다. 약 한 시간 이상을 반경 300m도 안되는 야산지대를 종횡무진으로 들쑤시다가 완벽하게 퍼져버렸다. 괜시리 목이 마르지도 않았건만 기세좋게 마셔버린 그 물이 미치도록 그리웠지만 30도의 날씨 속에서 분주하게 거친 야산을 뚫고 오르내린 나는 어느새 항복을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한들 여기서 '항복'을 외친다고 산신령이 나타나서 대충 꾸짖고 공중부양으로 데려간다던가 정확한 경로가 땅 위로 표기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길을 잃기 전까지의 장소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약 10여분을 다시 올라갔다가 '아니다, 이렇게 거슬러 올라갈 체력이 있다면 차라리 이 산을 뚫고 내려가는데 쓰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되돌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길을 잃기 시작한 지점은 바로 위의 사진이었다. 수많은 등산객들이 바위위에 스프레이로, 혹은 리본으로 외포리 방향을 오른쪽으로 안내하였다. 심지어 그 길은 로프난간까지 잘 설치된, 제대로 된 등산로였다. (위성지도에 안 나왔을 뿐이다...)
나는 그저 묵묵히 땅을 보며 걷다가 오른쪽으로 빠지지 않고 직진을 한 것이고, 길이 사라질 즈음에도 '이 부분은 제초가 영...관리 부실이네...'하고 올곧게 지나간 것이다. 위성지도를 믿고.
그 당시 다른 이의 등산 트립을 다운로드 받았다면 해결될 일인데 나는 묵묵히 '지도는 틀리지 않는다.'라는 굳은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나름 수 없이 길을 다녀 본 내 신조 중 하나는 '절대 지도를 믿지말라'와 '현장에 가 봐야 알 수 있다.'이다.)
또한 길을 잃을 곳까지 거슬러 올라간 후 뒤만 돈다면 바로 저 바위를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기가 막히게도 저 바위를 목전에 두고, (그 바위를 바로 몇 m 앞에다 두고) 그 몇 m를 더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거슬러 올라갈 체력이면 차라리 내려가는데 쓰자...'고 한 것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과거에 나처럼 그 구간에서 길을 잃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수 많은 이들이 보기 흉하게 바위에 스프레이를 그려댄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나 리본을 싫어하지만 사람들이 그 나뭇가지에 리본을 단 것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그 갈림길에서는 말이다.
어느덧 갈증은 극에 달했고 더이상 침도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 앉아서 고개를 숙이는데 머리가 멍해지더니 눈 앞이 깜깜해졌다. 시야가 극도로 좁아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잠시 쓰러진 채로 나는 진지하게 119를 누를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힘들게 몸을 일으키고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온 몸으로 그냥 산의 모든 것들을 헤치며 꺾고, 밟고, 뛰어내리면서 그저 그 등산로의 선, 마을의 방향 만을 믿고 나아갔다. 여태 걸어온 6시간의 몇 배에 달하는 지옥같은 1시간, 그리고 그 지옥같은 1시간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던 내리막길을 '개척'하여 내려가다 꽤 잘 다듬어진 묘지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묘지를 따라 난 오솔길을 통해 그 허망한 녹색 선이 끝나는 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
마을 어르신께 양해를 구하고 마당의 수돗물로 목을 축였다. 모든 진기를 다 쏟아내었기에 그 외포리까지 약 3km의 길을 걷기에도 힘들었다. 결국 마침 외포리로 나가신다는 (제초기를 실은) 트럭의 뒷칸에 올라타 외포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무지에 의한 고생도 추억으로 넘길 때가 되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날을 그렇게까지 보내지 않을 수 있었던 꽤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먼저 정확한 사전조사로 미꾸지고개의 슈퍼가 현금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미리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샀거나 현금을 준비해가서 현지에서 샀을 것이다.
무더운 날씨와 순조롭게 진행해도 약 2시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혈구산 정상에서 '귀찮다는' 이유로 물을 억지로 다 마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도가 길이요 생명이다'라는 것을 더 빨리 포기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갔다는 말이지?'하고 타인의 트립 기록을 다운로드 받을 생각을 했었더라면 조금은 더 빨리 위기를 모면했을 것이다. (블로그의 등산기에는 이 갈림길 부분에 대한 주의를 적어놓은 분들이 거진 없었음을 볼 때엔, '100명 중 1명이나 헷갈릴 그런 길'에 내가 바로 그 1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니 할 말이 없다.)
혹은 거슬러 올라갔을 때에 그 길을 잃은 초입을 눈 앞에 두고 몸을 되돌리지 말고 그대로 올라가서 '자아 여기까진 분명 제대로 왔고...'하고 체크했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뭐, 사실 '그냥 날도 좋은데 집에서 퍼질러 있지 뭐...'했다면 더더욱이 앞선 모든것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날 하루는 정말 대단한 것을 배운 날이었다. 지도의 신뢰성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과 내가 예상하는 거리와 시간은 그저 내가 예상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내 체력은 역시나 저렴하기 짝이 없다는 것.
사실 위의 것들을 다 합친듯한 깨달음이 있으니 '모든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온 몸으로 책임지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한 트레킹에서도 이런 수 많은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건강, 안전, 행복 등이 정해지는 법인데 지금까지의 나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선택들을 통해 지금의 모습과 위치에 도달했을까?
'이 길보다는 저 길로 가자'라는 선택은 인생에 비유할 때 얼마나 무서운 의미를 가지는가?
대부분의, 아니 전적으로 모든 선택은 인생에 있어서 되돌릴 수 없는 부분을 가져온다. 내가 그 전공이 아닌 이 전공을 했더라면...하는 부분도 되돌려 다시 시작한다면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 경제 행위가 가능한 나이로 따진다면 약 1/40 이상에 해당하는 부분을 날려버리는 셈이다.
사회에서는 내가 왜 그 때 강하게 연봉 협상을 선택하지 않았지? 라는 후회로 1년동안 같은 연봉이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내가 왜 그만두지 못했지? 라는 회한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10년을 날려버리기도 한다.
내가 왜 그 제안을 거절했지? 라는 한탄은 기대비용, 기회비용을 계산하면 수천만에서 억에 가깝거나 그것을 넘기도 한다. 거기에 사회적 위치와 만족감은 별개이다. 그 커다란 덩어리를 날려버리고 술 한 잔에 '그런 제안도 받았던 사람이야~!'하고 외친들 누가 그 술 값을 내주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 사회에서의 관계... 그 모든 것에 우리는 지금도 다양한 선택을 한다. 물론 게임이 아니기에 리셋 버튼은 주어지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을 시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지도 어떻게 변했을지도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요는 하나다. 그 선택을 하기 전 굉장히 많이 생각해보고 양 손에 쥔 것들을 통한 가능성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게 나중에 가서 영 좋지 않은 패가 되더라도 후회는 없도록, 정말 많이 고민하고 다양하게 대입해보고 비교해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감하게 강제로 밀어붙일 때'나 '최대한 안전하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히 짚어 나아가야 할 때'를 정해야 한다. 적어도 내 인생, 내가 마음대로 버무릴거야! 하고 외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
이후 지리정보팀장과 다시 찾았던 그 산과 그 구간은 지독히도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 바위를 손가락질하며 너무 끔찍했던 기억을 웃어 넘길 수는 있었지만 그 때 왜 그렇게 멍청하게 잘못된 선택만 했을까? 하는 후회는 짙어져만 왔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이제 벌써 마흔셋이고 인생에서 여태 해왔던 선택만큼의 선택이 남아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손쉽게 나오는대로 내뱉고 기분에 따라 정할 것인가, 혹은 단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본 후 정할 것인가에 따라 온 몸으로 뒤집어쓰게 될 결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진부하지만 '길을 걷는다는 것이 인생과 비슷하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분들에게 듣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거짓은 분명 아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의 몸에 새겨졌건만 이제사 길을 걸으며 느끼게 되었으니 이 또한 모자란 내 탓이다.
참으로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가야할 길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