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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Jun 24. 2020

포기할 줄 아는 지혜

그것은 전체에서 꽤나 작은 것이다.

<싫다 싫어...>

정말 징글징글한 하루였다.


적어도 여태 태어나서 내가 잡은 아시바 파이프를 모두 합쳐도 오늘 하루 잡은 양의 절반이나 될까 싶었다.

발음을 좀 쎄게, "아...시바..."를 입에 달고 다닌 하루였다.


그놈의 능선은 높낮이도 꽤나 차이가 컸지만 거진 모든 봉우리가 깎아지른 듯 했다. 아시바 파이프를 잡고 하나하나 올라서야 했고 내리막도 그와 같은 경사도를 자랑했다. 그렇게 하나하나를 넘고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은 지독히도 험했다. 


저질체력으로서는 어디에 내어놔도 발군을 자랑하는 나는 어느 순간 오로지 "제발 끝나라..." 혹은 "언제 끝날까?"하는 생각 뿐이었다. 지루함은 없었다. 하나하나의 풍경이 예술이고 봉우리마다 환상적인 자태를 보여줬으니까.

<그래도 남는 것은 사진 뿐>

다만 게이지의 바닥을 친 체력, 그 경사에 아시바 파이프를 잡고 버틸때마다 오는 근육 뭉침(쥐나기가 가까워진다는 징조이다. 실제로 그 경사에 그 파이프를 잡은채로 햄스트링에 쥐가 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이 점점 심상치 않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마지막에 만나야 할 봉우리의 이름은 광대봉이었다.


광대봉이라... 


뜬금없이 울릉도 답사때 송곳봉이란 곳이 생각났다. 사망사고가 났던 봉우리로 실제로 봐도 도저히 사람이 오를 곳이 아니었었다. 이번에 만날 광대봉은 올라가다가 정말 광대처럼 실성할려나 싶다.


문제는 언제나 내 체력이다. 마지막, 그 많은 봉우리를 넘어온 여정에 단 하나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이름은 광대봉으로 무시무시하지만 여태 내가 넘어온 봉우리와 그다지 크게 경사도가 차이나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내 체력을 알았고 한계를 알았다.

<감사합니다.>

걱정이 커져가던 그 때, 그 봉우리 밑에 도달했을 때 우회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전 무리입니다. 여기서 우회 등산로를 이용할게요. 있다가 만납시다."


지리정보팀장이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아무래도 내 몸 상태를 나름 파악하고 있었으리라. 


사실 이 광대봉을 내려가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종 도착지까지 한참은 더 가야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남은 구간이 큰 오르막이 없이 완만한 내리막이라는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사실이지만 거리가 얼마나 될 지, 오르내림이 얼마나 부칠지는 직접 가봐야 아는 것이기도 했다.


봉우리 밑에서 헤어져 나는 우회 등산로를 이용했다. 우회 등산로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거의 폐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심한 산비탈에 거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고 내리막 경사도 위험천만하긴 했다. 그래도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무엇을 잡고 올라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내 체력으로도 충분히 진입할 수 있었다.

<이게 언제적 캔이냐....>

그렇게 우회 등산로를 내려가던 중 버려진 캔커피 깡통을 만났다. 유명 영화배우의 모습이 스케치된 그 깡통을 보니 특유의 그 CF가 떠올랐다. 그나저나 이게 도대체 몇 년 전의 물건인지...


기묘하게도 땅에 파 뭍혀있지 않고 산비탈의 오솔길 위에 몸을 드러낸 그 캔은 그렇게 아주 한참만에야 사람을 마주한 셈이다. 


나 역시도 그 캔이 반가웠다. 그 캔이 나에겐 "아, 이 길도 사람이 다닌 길이 분명하구나..."하는 알림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우회 등산로를 선택했기에 만날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


결국 난 우회 등산로를 지나 광대봉의 반대편에서 지리정보팀장을 기다린 끝에 해후(?!)를 나누었고, 비축한 힘으로 남은 능선 (유난히도 길고 칼바위라 위험하고 바람마저 거셌다.)을 안전히 넘어 내려올 수 있었다.


이덕진의 "기다릴 줄 아는 지혜"라는 노래가 있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사람들은 패배라고 하지..."하며 시작되는 노래다. 나는 그 노래의 가사를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사람들은 패배라고 하지..."라고 바꿔부르곤 한다.


자신의 한계, 혹은 현실을 빨리 인식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로인해 더욱 시간을 벌거나 다음을 위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혹은 더 큰 목표나 명제에 대해 훨씬 더 빨리 도달하거나 이룩할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그 날 걸어야 했던 그 구간의 수많은 봉우리 중 가장 마지막 봉우리를 결국 실측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반대로 그 날 안전하게 끝까지 그 구간을 대부분 걷고 지리정보팀장은 걷지 못했던 우회 등산로를 걸어본 경험을 얻은 것이다. 어찌보면 둘의 경험과 결과를 합하면 완전한 코스에 우회 등산로 확인까지 더해진 셈이니 꿩 먹고 알 먹고라 볼 수 있다.


자기합리화라고 혹자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무리를 했더라면 자기합리화가 주는 만족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위험에 처했을 수 있고 탈진되거나 부상을 당했을 경우 함께한 이에게도 피해를 주고 그 날의 답사를 더욱 곤경으로 몰아넣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해가 질때쯤에야 내려왔으니 말이다.)


많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목표를 향한 도전 속에 가끔은 "포기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느낀다.


더 큰 꿈을 위해, 더 큰 그림과 목표를 위해 당장의 갈림길에서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닥친 목표가,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가 어찌보면 굉장히 간단히 해결이 되고 더 큰 목표, 혹원 원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는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


인생의 기회비용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면 어떤 것이 이득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는 그 시간이 인생 자체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오늘, 생각해보니 별 것 아닌 하나를 포기하면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하루이다. 그 산에서, 그 길에서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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